“하디는 개인영혼 구원 중시한 선교사이자 신학자” 하디 사역 조명 공개강좌 열려
입력 2013-05-23 17:38
오는 8월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하디 1903 성령한국대회’를 앞두고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업적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신학강좌가 열렸다.
지난 21일 서울 냉천동 감리교신학대에서 ‘로버트 하디, 그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공개강좌에서 이후천 협성대 교수는 ‘선교사로서 하디’, 김칠성 목원대 강사는 ‘부흥운동가로서 하디’, 이덕주 감신대 교수는 ‘신학자로서 하디’를 각각 조명했다.
미국 남감리회 소속 캐나다인 선교사 하디(1865∼1949년)는 1903년 함남 원산의 한 성경공부 모임에서 자신이 백인우월주의에 빠져 한국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음을 공개적으로 회개함으로써 그해 원산 대부흥운동의 불씨가 됐다. 이 부흥의 불길은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져 한국교회의 영적 각성을 이끌어냈다.
이후천 교수는 “하디는 일제 강점기에 정의를 추구하는 한국 백성들의 활동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점 등 일부 과오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열정적이고 전인적인 선교사 인생을 살았다”면서 “그는 거시적 차원의 사회구조 개선보다는 개인 영혼의 구원과 교회 성장을 주요 목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칠성 강사는 하디 선교사가 주도한 원산 대부흥에 관해 발표했다. 김 강사는 원산과 평양의 부흥운동을 따로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원산에서 시작한 부흥운동이 평양에서 절정에 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덕주 교수는 1907∼1935년 협성신학교(감신대의 전신) 교수·교장으로 재임하며 60여권의 저서를 펴낸 신학자로서 하디의 사역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하디는 진보와 보수 신학의 양극단을 지양하는 중도적 신학을 추구했으며, 교파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감리교와 장로교 연합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고 평가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