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20명 멘토들 미리 쓰는 자신의 비문 ‘살아있으니까 보이는 거다’
입력 2013-05-23 17:41
살아있으니까 보이는 거다/김수미 외(지누·1만5000원)
28세 꽃다운 나이에 일명 ‘일용엄니’ 역을 맡은 그는 또래의 여배우들이 수영복을 입거나 베드신을 촬영할 때 환갑잔치 신을 찍어야 했다. 탤런트 김수미 이야기이다. 20년 동안 묵묵히 일용엄니 역을 해낸 그는 이제 정상 자리에 우뚝 선 채 여러 권의 요리책을 내고 신현준과 탁재훈을 양아들로 삼았을 정도다.
그런 그가 자신의 비문(碑文)에 새길 문장으로 ‘나팔꽃을 사랑한 여자, 잠들다’를 일찌감치 정해놓았다고 고백한다. “오죽했으면 김혜자 언니한테 내가 죽으면 무덤가에 나팔꽃을 심어달라는 부탁을 했을까요.” 나팔꽃만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는 김수미는 “제 비문은 아마도 엄니에게 바치는 제 마음인지도 모르겠네요”라고 털어놨다.
김수미를 필두로 빈곤아동의 대부 박경양 목사, 만화가 연하늘, 핵의학과 전문의 정준기 서울대 의대 교수, 사진작가 고홍곤 등 우리 시대 20명의 멘토들이 미리 쓰는 비문을 모았다. 이들의 비문은 죽음 이후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을 때의 목표와 지향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의 ‘작아서 행복했습니다’라는 비문은 남들보다 적은 손가락에 바치는 일종의 찬송이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