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사각형과 굽은 선 살가운 맛은 무엇에 있나

입력 2013-05-23 16:59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정석/효형출판

시안(西安)과 서울. 각각 중국과 한국의 오래된 역사 도시이지만 그 설계는 천양지차를 느끼게 한다. 당나라 수도로, 장안으로 불렸던 시안은 성곽이 네모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시가지는 두부 자르듯 잘 구획돼 있다. 명·청 시대 수도 베이징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서울은 어떤가. 성곽의 모양부터 네모반듯하지 않다. 평지에 성을 쌓은 시안 베이징과 달리, 능선과 언덕을 따라 성곽을 쌓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길들조차 휘고 기울어졌다.

도시공학 전문가인 저자 정석 가천대 교수는 이걸 서울의 매력이라고 한다. 배산임수의 자연, 오랜 역사가 첫째, 둘째의 매력이라면 마지막 셋째 매력은 서울을 계획하고 설계했던 ‘멋지고 우아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여느 도시와 다른 서울의 설계에는 자연을 존중하는 공존의 철학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서울은 텍스트다. 서울의 변천사에서 뒷골목 순례에 이르기까지 서울을 소재로 한 책들은 무수히 나왔다. 이 책은 도시 설계 관점에서 서울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설계라고 해서 전문가들의 세계는 아니다. 출퇴근길 만나는 서울 풍경, 내 작은 관심이 바꿀 수 있는 서울의 미래 풍경, 그런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 이유로 “시민은 그 수준에 맞는 도시에 살기 마련”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따끔하게 들린다.

책은 13년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도시 서울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돼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결과물이다. 그가 전하는 서울관(觀)은 때론 생경하게 들리기도 하고 때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무엇보다 은근슬쩍 질문을 던지는 게 이 책의 힘이다.

스폰지밥처럼 생긴 서울 삼성동의 크링, 물결치듯 휘어지는 형태의 강남 GT타워, 새로 준공된 서울시 신청사, 동대문 운동장을 헐고 그 자리에 짓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이처럼 ‘튀는 건물’에 대한 예찬론이 많다. 그런데 저자는 “도시를 갤러리로 보고 튀는 건물로 채워가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도시가 작품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옥외광고물처럼 또 다른 시각적 강제이며 도시는 갤러리기에 앞서 ‘삶터’라는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을 접하며 우리는 복개 하천을 다시 개복하는 등 개발연대를 반성하면서도 다시 모든 걸 상품화하는 신자유주의시대 논리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전망 좋은 곳에는 살림집이 아닌 정자를 지었다”는 조상들 얘기 등은 반추할 구석이 적지 않다.

공존의 도시를 위한 노력에는 성과도 있다.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쓸려 갈 뻔 했던 동소문동 한옥 주거지 일대의 재개발 반대 운동이 성공한 것이 예다. 하지만 우리의 한옥 보존은 투자 대상으로 여겨진 한옥은 보존했으나 공동체는 살리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난개발로부터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지키자는 새로운 도시 운동은 또 다른 딜레마를 낳기도 한다. 수원시가 화성 복원 사업 일환으로 우화관(于華館·정조 때 세워진 관리 숙소) 복원을 추진함에 따라 우화관 터에 세워진 신풍초등학교는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교가 결정됐다. 200년 역사를 지닌 우화관을 복원하기 위해 100년 역사를 지닌 학교를 없애는 게 옳은 일일까.

출근길, 획일형 아파트가 문득 거슬렸다면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 대해 잠깐이라도 고민했다면 이 책을 권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