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타인에 대한 예의
입력 2013-05-23 18:57
아침마다 페이스북을 열어본다. 요란한 알람소리 대신 새 글을 알리는 벨소리가 나의 아침을 깨운다. 지인과 그의 지인들을 거쳐 나에게 흘러온 아침소식들은 순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때론 가볍게 때론 무겁게, 그렇게 함께 느끼고 생각하다 보면 무심결에 놓치고 살았던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며칠 전 아침, 친구가 추천해준 글도 그랬다.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아니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였다.
어느 병원의 수술실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그는 집도의로 보이는 의사가 나타나자 소리를 질렀다. “오는데 하루 종일 걸리나? 당신은 내 아들의 생명이 얼마나 위급한지 모르나? 의사로서 어떤 책임의식도 없나?” 의사는 그를 달랬다. “죄송합니다. 제가 외부에 있어서 전화 받자마자 달려왔습니다. 수술을 시작할 수 있도록 조금만 진정해 주세요.” 소년의 아버지는 더 화를 내며 말했다. “진정하라고? 만약 당신 아들이 지금 여기 있다면 진정할 수 있겠어? 내 아들이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거야?” 신의 가호가 있을 거라며 수술실로 향하는 의사에게 그는 들으라는 듯이 내뱉었다. “자기 아들 아니라고 편안히 말하는구만.” 몇 시간 후 수술을 마친 의사는 아이가 무사하다는 말만 남기고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나갔고, 남겨진 그는 뒤틀린 심사를 간호사에게 쏟아내며 모진 말로 의사를 비난했다.
내 심정 또한 소년의 아버지와 같았다. 한술 더 떠, 의사들이 다 그렇지 라며 비난의 칼을 꽂았다. 경박했다. 사실 그 의사는 전날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수술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고 소년을 살리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 아픈 걸음에 감히 손가락질하며 비아냥댄 것이다. 남의 허물 같지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자신의 책임과 도리에는 이런저런 사정을 내세워 한없이 관대해지면서 타인의 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대했던 것 같다. 남 속도 모르고 내지른 나의 무심한 말들이 누군가의 가슴에서 아프게 메아리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죄스럽기 짝이 없다. 스틸 사진 몇 장만 보고 영화 전체를 평할 수는 없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렇지 않을까. 보이는 것만 보고, 또는 남의 말만 듣고 가타부타 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타인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그 인지상정의 도리를 오늘도 무사히 지킬 수 있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