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特使 정치

입력 2013-05-23 18:50

전쟁을 준비할 경우에 완전무장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자주 평화를 이야기한다. 상대국에 특사를 보내 그 나라 최고지도자가 좋아할 만한 말과 선물을 잔뜩 풀어놓는 것이 통상적인 수법이다. 가깝게는 6·25 남침 전 김일성이 바로 그랬다.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우리 쪽 모의 지형을 만들어 남침 준비를 하면서도 겉으로는 평화회담 운운하지 않았던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무하마드는 훨씬 교활했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특사를 갖은 친절과 배려로 맞아들이는 척하면서 불가침 조약을 지키겠노라고 맹세했다. 뒤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헝가리·세르비아와 3년 동안의 상호중립조약을 맺으면서 사전 준비를 했다. 아무 방해 없이 무력을 키운 무하마드는 결국 비잔틴을 손에 넣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특사 가운데 압권은 두 차례나 유비 측을 끌어들이려 한 제갈공명의 형 제갈근이 아닐까. 동오의 맹주 손권의 특사로 선발된 그는 촉한의 2인자 격인 관우를 찾아가 혼인동맹을 제안한다. 손권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결혼시키면 어떠냐는 그럴듯한 아이디어였다. 이때 관우의 말이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보낼 수 있겠는가.”

특사 가운데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눈에 띄는 역할을 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일 것이다. 1971년 7월 닉슨의 특사로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외교의 길을 터 데탕트 시대를 활짝 열었고 G2의 맹아를 싹틔웠다. 1973년 1월에는 북베트남과 접촉해 평화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중국 역대 왕조사는 물론 논어 맹자 등 고전과 삼국지 수호지 등에도 해박해 중국 사람보다 중국을 더 잘 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지난 3월에도 중국을 방문해 리커창 총리와 환담하고 두 나라의 관심사를 논의했다. 비밀 특사에서 출발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큰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안팎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김일성의 빨치산 동기인 최현의 아들로 더 유명한 그가 작달막한 키에 어울리지 않는 군복을 입고 깔끔한 양복 차림의 왕자루이와 회담하는 장면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아베도 며칠 전 자신의 측근 이지마 이사오를 북한에 특사로 보냈다. 바야흐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합종연횡하는 세력들이 특사 정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