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창환 (12) “신학생이 너무 많다” 장신대 정원감축 단행
입력 2013-05-23 17:02
이종성 학장의 요청으로 다시 장로회신학교에 몸담은 건 1974년 9월. 교무처장과 교학처장, 대학원장 등을 거쳐 학장을 맡은 뒤 다시 교수로 1년반 동안 모교를 섬겼으니 장신대는 나의 평생 직장이나 다름없다.
1983년 5월부터 4년 동안 학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단연 학생 정원을 감축한 일이다. 한국장로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목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나는 1959년 계일승 학장 시절에 “신학생이 너무 많기 때문에 10년간 신학교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장 시절, 장신대 대학부 신학과 입학 정원은 230명이었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걱정이 가득했다. 우선 입학 정원을 절반으로 줄였다. 일간신문 등에 관련 기사가 나고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뒤이어 대학부 신학과 입학 정원을 50명으로 줄였고, 그 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교수 석좌제다. 이 역시 학생 정원 감축 문제와 연관돼 있다. 학생 주머니를 털어 학교 재정을 운영하려니까 신학교는 불가불 입학 정원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수입원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교수 석좌제다. 서울 영락교회와 새문안교회 등이 호응했다. 하지만 지방의 많은 교회 목회자들은 여전히 목사를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고했다.
신학교가 많은 이유는 뭘까. 현재 한국에는 200개 가까운 신학교가 있다고 한다. 이들 신학교에서 매년 수천명의 목사 후보생이 쏟아져나온다. 그리고 거의 다 목사가 된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임지(任地)가 없는 사실상 무직 목사인데도 신학교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신입생 유치 경쟁에 매달리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것은 신학교 운영 목적이 양질의 목사 양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신학교를 경영할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신학생이 많아야 학교가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현상이 나타나는 근본 원인을 몇 가지 꼽을 수 있다.
교파가 분열하면서 교파마다 신학교를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교파마다 내세우는 교리와 주장이 다른 탓이다. 또한 많은 목사들이 자신이 나온 신학교 학장이나 교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어 하는 욕심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목사가 많고 신학생이 많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과연 옳을까.
이 같은 생각이 고착화된 데는 종교개혁 정신의 퇴색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종교개혁 정신 중 하나가 ‘평상생활의 거룩’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은 거룩하게 부름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가르치는 일로, 농사꾼은 농사일로 각자 맡은 일에 충성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성직자의 일만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신학의 빈곤과 왜곡이 오늘날 신학교의 위기를 가져온 게 아닐까.
장신대 학장 시절, 매년 맞는 개학식마다 신입생들에게 호소했다.
“여러분 신학교에 오신 것을 우선 환영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신학과 성경을 알기 위해 왔다면 대환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 목사가 될 생각으로 왔다면 재고해보십시오, 목사가 남아돕니다. 여러분의 전문 직장에서 전도를 하면 됩니다. 목사가 될 사람은 목사로서의 특별한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학장직을 내려놓은 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호소는 여전히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있다. 한국 교회, 한국 신학교의 현실이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