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입력 2013-05-23 17:02


마가복음 9장 35절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형제의 우애가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왠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오늘날 경쟁이라는 단어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필사적인 느낌이 커서 ‘결코 져서는 안 된다’는 절대성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과연 경쟁에서 양보하거나 지면 안 되는 것일까요? 이기는 경쟁이 있다면 지는 경쟁은 없는 걸까요? 양보, 섬김, 높여주는 경쟁은 없을까요?

예수님은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라’고 말씀하셨고, ‘섬김을 받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섬기라’고 말씀하셨고,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기기 위한 경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분들의 경쟁은 주께서 원하시는 양보와 섬김이 포함된 선한 경쟁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인이 가지고 살아가는 가치관과 그리스도 공동체의 가치관은 달라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과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법 및 가치관이 분명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자신이지만 우리의 영광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거룩한 목적을 배제하고 시작하는 경쟁은 결국 이기기 위한 경쟁일 뿐입니다. 사람이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은 스포츠일 수 있으나 멧돼지가 사람을 해치려고 덤비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흉악입니다.

세상의 정치인들도 국민을 섬기기 위해 자신이 국회위원이 되어야 하고,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만한 백성은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의 종 된 우리에게 ‘섬김’은 절대적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 주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 것은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의 종 된 사람들 중에 ‘너희’에서 예외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다른 이를 먼저 섬기셨습니다.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 말씀하시고 위로와 희망을 주셨고, 죄인이라는 이유로 멸시 받던 계층의 사람들과 식사하고 대화하시고, 아무도 만지지 않는 자를 만지셨습니다. 또 보좌도 없고, 면류관도 없고, 종의 무리도 없고, 병정도 없이 그저 빌린 구유에다 빌린 무덤이 그가 가진 전부였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실패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참 리더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으며, 위로와 힘을 얻었고 소망을 가져다주는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지는 것은 악한 것이고 이기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우선 이겨놓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이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어 가는 무서운 함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강한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질 줄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 먼저 아우 먼저’의 우애로 하나 된 성숙한 일꾼들이라면 기독교의 앞날은 더 빛날 것이라 믿습니다.

이무형 서울 신영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