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세피난처 이용한 역외탈세 뿌리 뽑아라

입력 2013-05-22 17:40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확보한 조세피난처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버진아일랜드 등에 법인이나 금융계좌를 보유한 한국인이 245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1차로 공개된 명단에는 이수영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부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등이 포함됐다. ICIJ의 자료가 광범위해 앞으로도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개인과 기업이 속속 공개될 것이다. 사회적 파장이 워낙 큰 사안인 만큼 세무 당국은 실제 탈세행위가 있었는지 등 사실관계를 신속히 밝혀야 한다.

조세피난처는 등록세만 내면 법인을 손쉽게 등록할 수 있는 곳이다. 기본적인 경영정보뿐 아니라 모든 금융거래 내역이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돼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 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해 각국이 조세피난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조세피난처가 개인과 기업의 대규모 탈세 창구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세청은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를 시행하고, 전담 기구를 만들어 정보 수집과 조사를 강화해 최근 5년간 2조6218억원 규모의 역외탈세를 적발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은 7790억 달러(870조원)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물론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했다는 사실만으로 역외탈세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조세피난처 탐사보도를 주도하는 ICIJ의 제러드 라일 기자도 “단순히 명단에 있다고 해서 탈세나 범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대기업의 비자금을 수사할 때마다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가 등장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사 및 계열사와의 정상적인 거래를 위장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조세피난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비자금은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사용되거나 변칙 상속 및 증여의 수단으로 악용됐다.

탈세는 국가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국부를 해외로 유출하는 역외탈세는 더욱 용서할 수 없다. 대기업 오너, 고소득 자영업자 등 지도층 인사들의 탈세에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세무 당국은 ICIJ의 자료 공개를 역외탈세 근절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의 활동에 박차를 가해 가용 인원을 모두 동원하고, 해외 세무 당국과의 공조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이름이 공개된 경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조사를 벌여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개인이나 기업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데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