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목사의 시편] 죽음에 대하여 논의하자
입력 2013-05-22 17:36 수정 2013-05-22 22:05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위원장 이윤성)가 ‘무의미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 초안을 지난 20일에 발표하였다. 이 권고안은 오는 29일 공청회를 거쳐, 7월에 예정된 2013년 제1차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본회의에 보고될 예정이며, 이를 기반으로 보건복지부가 이른바 ‘존엄사’ 법제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즉 존엄사를 제도화하기 위한 초석이 이미 놓인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권고안은 존엄사의 대상을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악화하는, 즉 의학적으로 임종기(臨終期)에 있는 환자’로 규정하였고, 존엄사를 결정하기 위한 판단근거로 환자 본인의 명시적인 의사(意思)표시(연명의료계획과 사전의료의향서) 외에도 환자에 대한 ‘의사(意思)추정’ 및 ‘대리결정’도 인정하였다. ‘의사추정’의 경우 가족(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2인 이상이 환자의 의사에 대해 일치된 진술을 하면 의사 2인(또는 병원윤리위원회)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여 인정할 수 있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적법한 대리인의 결정 또는 가족 전원의 동의서와 의사 2인의 확인이 있으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대리결정’도 허용했다.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전문적인 의학 지식과 기술, 장비가 필요한 특수 연명의료로 제한되었다.
물론 이 권고안이 실제 법률이 되려면 아직도 거쳐야 할 과정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존엄사 논란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반면에 한국교계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인 논의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어떠한 형태로든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너무나 민감한 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가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논의하는 마당에 교계가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존엄사 논란은 교회라고 해서 조용히 비켜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이성은(Grace)’ 자매의 존엄사 논란은 미국의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환자 본인은 존엄사를 선택하였으나, 현직 목사인 부친을 비롯한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이 사건은 법정분쟁으로 비화되었고, 법원은 마침내 존엄사 집행허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그 이후 이 자매가 자신의 모든 ‘의료대리권(medical proxy)’을 부친에게 넘기며 항소심의 판결은 뒤집혔고, 이 자매는 가족의 품에서 보호를 받다가 마침내 올해 2월 향년 28세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국가가 존엄사를 법제화하는 이상 이와 유사한 사건이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계는 더 이상 존엄사에 대한 논의를 피일차일 미루지 말고, 조속한 시일 안에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꿈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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