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패션 ‘차세대 피아노 여제’ 첫 내한공연 피아니스트 유자 왕
입력 2013-05-22 17:04
아찔한 ‘킬힐’과 몸에 딱 달라붙은 다홍색 초미니 원피스. 클래식 연주회 의상으로는 너무도 튀었다. 우아한 롱 드레스에 익숙한 관객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어떻게 연주했는지는 이미 관심 밖의 일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는 공연 직후 “18세 미만의 입장은 제한됐어야 했다”고 그의 패션을 꼬집었다.
중국 출신 여성 피아니스트 유자 왕(26). 그가 2011년 8월 미국에서 LA 필하모닉과 협연할 당시의 얘기다. 하지만 그를 ‘젊고 섹시하고 튀는 피아니스트’ 정도로만 기억한다면 오산이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초절정의 기교, 깊은 음악적 통찰력, 자연스러우면서도 거침없는 상상력, 우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 그래서 그는 종종 ‘피아노 여제’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뒤를 이을 만하다고 평가받는다. 피아니스트 랑랑, 윤디와 함께 중국 출신 클래식계 슈퍼스타로 분류된다.
다음 달 첫 내한공연을 앞둔 유자 왕을 최근 이메일 인터뷰로 먼저 만났다. 그는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옷을 입을 뿐”이라며 “내 의상은 연주할 때도 전혀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고 짧게 답했다. 리뷰도 거의 읽지 않는다는 이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은 것”이다. “상업적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유자 왕은 6월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스위스 출신의 거장 샤를 뒤투아(77)가 이끄는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그는 “첫 한국 공연을 이들과 함께하게 돼 무척 기쁘다”며 “10여 년 전쯤 뒤투아와 함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매우 성공적으로 연주한 이후 여러 차례 그와 함께 하는 무대에 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쇼팽은 어느 피아니스트에게나 특별하다. 그는 피아노의 소리와 울림을 완벽하게 이해한 작곡가다.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장인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라고 선곡 배경을 밝혔다.
유자 왕의 음악적 토양에는 재즈 연주자인 아버지와 무용수 어머니가 있다. 늘 서양음악을 들으며 자랐다는 그는 테크닉보다는 음악의 본질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감정과 상상이다. 기교를 생각하는 것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피아노 연습보다 다른 일 하는 걸 좋아한다. 연습시간은 많이 할 때 하루 5시간, 보통 때는 2∼3시간 정도다. 그 이외 시간에는 박물관에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논다. 보통 스물여섯 살이 하는 것들을 한다”고 답했다.
1987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가 2005년 데뷔했다. “최근 새롭게 등장한 연주자 중 단연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그에게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은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시카고 심포니(미국),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독일),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네덜란드), 런던 필하모닉(영국) 등과 협연했고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다니엘 바렌보임(아르헨티나), 구스타보 두다멜(베네수엘라), 로린 마젤(프랑스), 핀커스 주커만(미국) 등의 거장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2009년부터는 독일의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인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음반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 중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아래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첫 번째 협주곡은 그래미상 베스트 솔리스트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