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오종석] 내부에서 진주를 찾아라

입력 2013-05-22 17:41


이명박 정권 초 ‘윗선’으로부터 사전에 낙점을 받은 한 금융지주 회장. 그는 공식적으로 이름이 거론되기 한 달여 전부터 주요 정치권 인사 등을 찾아다녔다. 당시 금융관련 업무를 하고 있지 않아 사전 정지작업 차원이었다. 대표적 ‘MB맨’으로 소위 ‘4대 천왕’중 한 명이 된 그는 화려하게 지주회장에 올랐다. 당시 설마설마 했던 금융가에서는 “책상 다리에서도 꽃이 피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도저히 가망성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지금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우리금융, KB금융, 농협금융 등 금융지주 회장이 누가 될 것인지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무슨 관련이 있다” “친박계 누가 누구를 민다고 하더라” 등 온갖 소문도 무성하다. 특히 ‘낙하산’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낙하산 지주회장의 부작용

그동안 금융권 CEO는 대부분 낙하산으로 채워졌다. 관 출신이나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학계인사 등이 주를 이뤘다. 우리의 금융 환경이 사실상 관치금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권 내부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었다. 청와대와 정치권, 관료들로부터 방패막이를 할 수 있는 인물이 와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고도의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주 회장이 외부에서 와야 정부 정책과의 무난한 시너지가 생긴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금융지주 회장 인선을 앞두고는 항상 외부에 눈이 쏠렸다. 또 CEO 결정 뒤에는 온갖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1인 권력 집중적인 ‘제왕적 회장’ 체제에서 각종 부작용도 속출했다. 금융권 전체가 지나치게 권력실세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언제부터인가 ‘금융권 CEO의 정치적 리스크’란 말도 등장했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지주 회장이 취임하면 1년간 적응 기간을 거치고, 1년간 일하면, 나머지 1년은 레임덕에 휩싸인다”고 털어놨다.

지금 우리 금융환경은 매우 어렵다. 내부적으로는 장기저성장의 늪에 빠져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엔저공습 등 국제적인 화폐전쟁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금융권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고 무너져가는 서민경제를 살리려면 구태에 빠져서는 안 된다. 홍기택 KDB산은금융 회장에 이어 또다시 ‘낙하산 논란’에 빠질 시간적 여유도 없다. 당장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며, 국민만을 위한 금융으로 거듭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내부 조직을 잘 이해하고 조직원과 소통이 원만하며,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인재가 필요하다.

조직안정 이끌 인재 필요

민영화를 추구하는 우리금융, 메가뱅크를 꿈꾸는 KB금융, 금융사로의 확실한 위상을 목표로 하는 농협금융 등 각 금융지주별로 목표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무조건 정권 입맛에 맞는 핵심 실세가 회장 자리를 꿰차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금융권 내부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고 은행장이나 증권사 사장을 거쳐 지주회사 회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수많은 금융인들도 이제는 “내가 열심히 하면 최고의 위치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과 자부심을 갖고 국민의 금융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여건이 형성돼야 한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물러날 뜻을 밝힌 뒤 한때 일각에서는 메가뱅크를 이끌어갈 ‘스타’가 없어 문제라는 얘기가 나왔다. 정권과 실세를 향한, 그런 스타는 이제 필요하지 않다. 조직원들로부터 인정받고 국민이 박수를 치는 그런 스타가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지주 회장에 모두가 희망하는 진짜 진주가 나오길 희망한다.

오종석 경제부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