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최영기] 통상임금, 노사 대타협으로 풀도록
입력 2013-05-22 17:36
“공익적 전문가가 조정하는 협의체 통해 임금체계 개편 과 일자리 나누기 나서야”
통상임금 문제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대통령의 의견 표명으로 국민적 관심사항이 되었고, 관계부처 장관들이 조급하게 속내를 드러내면서 해법은 더 꼬여가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지만 불과 며칠 전 고정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했으면 좋겠다는 산업통상부 장관의 발언을 기억하는 노동계로선 선뜻 대화에 나서기도 어렵다. 얻을 것은 없고 양보할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 노총은 더구나 곧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조합원들에게 양보를 설득할 처지도 아니다.
이런 정치적 고려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기대하지 않았던 우발채권이라 하더라도, 법원의 판결로 발생한 개별 근로자들의 임금청구권을 노동조합이 나서서 포기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대법원은 지난 20년간 판례를 통해 노사의 편법적인 통상임금 관리와 이를 조장하는 행정부의 지침을 바꾸도록 꾸준히 촉구해 왔다. 이번 사태로 야기될 혼란과 기업의 비용 부담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 기회에 분쟁의 불씨를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동안 노사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놓고 항상 다퉈왔고 소송도 끊이지 않았다. 학계 일각에서 노사의 대타협으로 임금 관련법 규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편법에 익숙해진 노사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임금체계를 바로잡는 일은 노사와 정부가 서로 미루던 숙제였고, 결국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밀린 숙제를 하게 된 셈이다.
문제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혼란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노사정이 합리적인 대안을 위한 토론보다 책임 떠넘기기 식의 공방만 벌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개별 사업장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발뺌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이 문제를 모두 소송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판례에 따라 행정지침을 고치면 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로 보면 오히려 근로기준법의 시행령을 고쳐 지금처럼 1개월 단위로 지급되는 임금만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원의 판례를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는 야당과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이지만 생산현장의 안정을 위해 정부는 이를 감수할지도 모른다.
그간 노사 합의에 따라 통상임금을 정해 왔기 때문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업들도 가만히 임금만 올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인건비 상승을 막기 위해 온갖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게 될 것이고, 고정적인 수당과 상여금을 차등화하거나 변동급여 형태로 전환하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사 신뢰가 깨지고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 문제를 개별 사업장의 교섭력에만 맡겨놓는 것도 상급단체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자 리더십을 스스로 포기하는 짓이다. 중소사업장일수록, 노동조합도 없는 90%의 근로자일수록 권리구제가 어렵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보더라도 통상임금 해법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불가피하다. 60세 정년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도 그렇고, 대대적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서도 경직적인 연공 중심의 임금체계를 손질해야 한다. 임금과 근로시간을 줄여서라도 고용을 유지하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임금직무체계를 혁신해야 할 시기다. 이는 노사가 나서야 할 일이지만 정부가 대화테이블을 만들고 타협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노사관계 현실이다. 다만 정부가 너무 앞서지 말고 공익적인 전문가들을 조정자로 하는 협의체를 통해 공감대를 이뤄 가능한 타협방안을 도출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대화와 타협에 참여함으로써 오히려 리더십이 강화되고 조직력이 확장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여러 차례 경험했듯이 사회적 파트너십의 확고한 기반이 없으면 사회적 타협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