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노무현 서거 4주기
입력 2013-05-22 17:35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필리핀의 베니그노 아키노는 유사한 점이 많다. DJ가 ‘한국의 아키노’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유다.
아키노는 1970년대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에 맞서 반체제 운동을 이끌다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심장병 수술을 명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다 1983년 귀국한다. 이때 많은 시민들이 공항에 나와 노란 깃발을 흔들며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공항 도착 직후 피살됐고, 이 사건이 대규모 반정부 운동을 촉발시켜 마르코스 정권은 무너졌다. DJ 역시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사형을 선고받았었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가 우여곡절 끝에 귀국했다. 귀국할 때 노란 깃발을 든 지지자들로부터 환대받은 점도 같다.
DJ가 노란색을 애용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1988년 총선에서 ‘황색 돌풍’을 일으켜 DJ의 평화민주당은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노란색은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이를 국민들 머리에 더욱 각인시킨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름에 ‘노’자가 들어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제16대 대선 당시 그의 유세장은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요즘 다시 노란색이 곳곳에 등장했다. 노란색 티셔츠와 노란색 손수건, 노란색 풍선 등등. 노 전 대통령 서거 4주기(23일) 추모객들이다. 친노세력의 끈끈한 연대를 느낄 수 있다. 친노의 연대는 다음 대선까지 이어질 듯하다. 지난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꿈, 결코 우리가 멈출 수도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다”며 집권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노 전 대통령이 바라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함께 이루자”고 했다. 지난 대선에 문 의원이 나섰듯 차기 대선에서도 친노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대선을 ‘노무현 대 박정희’ 구도로 몰고 갔듯 다음 대선 때도 출마하게 된다면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활용할 듯하다.
하지만 감성에 호소해 집권하려는 건 과욕이다. 소수파인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정신을 꿰뚫고, 축적한 콘텐츠가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친노는 되새겨야 한다. 시대정신에 걸맞은 새 비전을 마련하는 게 먼저다. 아울러 다음 대선은 2017년이다. 노 전 대통령을 놓아줄 때가 됐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