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사재기 파동 이후의 문학

입력 2013-05-22 17:36


근대소설은 18세기에 와서 발생했다는 게 일반적 통설이다. 그때는 산업사회가 막 시작될 무렵이다. 과거에 비해 더욱 복잡해진 사회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구체적이고도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소설의 융성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소설의 융성을 부르주아지와 근대 자본주의의 성장에서 찾기도 한다. 소설은 단행본 생산과 보급 기술을 장악한 산업 부르주아지, 즉 출판 자본과 샴쌍둥이처럼 맞물려 있다.

이달 초 발생한 출판사 ‘자음과모음’(이하 자모)의 사재기 파동은 소설과 출판 자본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사재기가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등 한결같이 장편소설을 위주로 행해졌음에 비추어 유명 작가의 장편을 중복 구매해 대박을 노리는 얄팍한 한탕주의가 소설 자체를 위기에 몰아넣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 난감한 것은 대부분의 문학수용자 혹은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라는 사실이다. 소설의 사재기는 결과적으로 독자들로부터 문학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제 살 깎기에 다름없다. 우리는 자모의 사재기 파동에서 베스트셀러 제조의 사술(詐術)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불가능, 즉 출구 없는 길에서 방황하는 정신의 몰락을 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작가의 영혼이 베스트셀러 순위 진입에 대한 갈망에 붙들려 있다는 점이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지 못한 대형작가들은 여지없이 체면을 구기고 만다. 출판 자본은 이들의 체면과 위신을 막대한 광고비를 통해 특별 관리해왔다는 게 사재기 파동의 핵심일 것이다. 아예 계약서에 광고비 지출문제를 명문화하는 경우도 있다.

3년에 한 권꼴로 장편을 내는 작가가 있다고 치자. 그는 연봉 1억원이 없으면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는 처지이다. 그러니 3년 만에 낸 장편에서 최소한 3억원의 인세를 거둬들이려면 최소한 30만부의 판매실적을 내야 한다. 하지만 30만부를 자력으로 판매한다는 건 한국문학시장의 협소성에 비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3억원의 광고비를 써야 30만부가 나간다는 게 문학서 시장의 불문율로 회자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작가가 출판사의 사재기를 인지하고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면 엄연히 공동정범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악순환이 소설의 위기를 낳는다고 경고해 봤자, 우이독경이긴 마찬가지다. 사재기 파동이 한 풀 꺾이고 4∼5년간 잠잠해진 연후엔 어김없이 또 다른 사재기가 고개를 드니 말이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다면 베스트셀러에의 의탁에서 문학인 스스로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에의 의탁은 문학의 영혼을 상업성에 저당 잡히는 허무와 상통한다. 이제 문학인들은 의탁의 문학을 끝내고 가열찬 현실에의 복귀를 부르짖어야 한다. 인간은 극한의 막다른 골목에서만 구제의 부르짖음을 듣는다. 영웅다운 패배. 여기에서 또 하나의 인간은 탄생한다. 그것은 새로 요구되는 작가의 면모다.

패배로부터, 말하자면 베스트셀러 순위 진입이라는 허망함으로부터 소설 미학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자모의 사재기 파동이 계기가 되어 장편소설의 내일이 가능하게 된다면 그것을 불러 영예 있는 좌절이라 이름 해도 좋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온갖 체험들이 연결되어 흐르는 유장한 대하(大河)이며 대륙풍의 정신적 면모이다.

우리는 지금 허망함을 뒤로 하고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한국의 작가들이여, 부탁이 있다. ‘내가 언제 문학을 한 적이 있었는가’라고 광야에서 외쳐라. “너희의 옷을 찢지 말고 바로 너의 마음을 찢을지라.”(요엘 2장 13절) 성서의 한 구절처럼 참으로 답답한 우리의 마음을 찢어 거기 ‘피’와 ‘울음’을 섞이게 하라.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