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나치 그림자… 유럽선 아직도 ‘바그너 논쟁’

입력 2013-05-21 19:03

22일(현지시간)로 탄생 200주년을 맞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음악과 업적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이 전했다.

바그너는 ‘탄호이저’ ‘니벨룽겐의 반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숱한 명곡을 남겨 음악사는 물론 예술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예술가지만, 그에 대한 논란은 정치·사회적 모양새를 띠고 있다. 바그너 음악의 정치성과 반유대주의 때문이다.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단순한 심증이 아니다. 에세이 ‘자유로운 생각’에서 그는 “우리는 항상 본능적으로 그들(유대인)과의 접촉에 불쾌감을 느낀다”고 적었다. 다른 에세이 ‘음악에서의 유대주의’에선 “유대주의는 현대문명의 사악한 정신”이라고 썼다.

더욱이 게르만 신화에 토대를 둔 주제에 장대한 서사, 웅장한 선율로 이뤄진 그의 곡들은 19∼20세기 갓 통일을 맞은 독일인들의 민족의식을 강하게 자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그너 자신이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 제국과 국가주의에 흠뻑 빠져 있었다.

바그너 사후 들어선 나치 정권이 그에게 주목했다. 나치는 바그너의 음악을 선전 도구로 적극 활용함으로써 바그너에게 결정적으로 ‘정치색’을 부여했다. 히틀러는 청소년 시절부터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고, 집권 후 그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도 착수했다.

이 같은 논란은 최근 곳곳에서 바그너 탄생 200주년 행사가 열리면서 더욱 커졌다. 독일의 오페라 감독 부르크하르트 코스민스키는 지난 4일 오페라 ‘탄호이저’를 연출하면서 시대 배경을 나치 정권 당시로 설정하는 시도를 했다. 가스실을 연상케 하는 안개가 무대에 뿜어져 나오는가 하면 배우들이 머리를 깎인 채 총살당하는 장면이 공연되는 바람에 첫 공연 이후 막을 내리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0주년 되는 해에 논란이 되는 작품이 최소 하나는 나오리라는 건 예상 가능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는 아직도 바그너의 음악이 연주되지 않거나 간혹 연주되더라도 뜨거운 논란을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는 바그너의 증손녀 카타리나가 바그너 일가가 보관하고 있는 여러 편지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일가의 편지가 공개되면 바그너 가문과 나치와의 연관이 확실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고 신문은 내다봤다. 바그너의 손자인 볼프강은 히틀러 유겐트 출신이고, 볼프강의 어머니인 위니프레드는 히틀러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