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광부로, 간호사로… 그 땀과 눈물이 조국발전 밀알 됐습니다

입력 2013-05-21 19:09


20∼30대에 독일로 떠났던 처녀·총각들은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다. 그들이 갱도와 병원에서 흘린 땀과 눈물은 뒤늦게나마 55평 작은 공간에 고스란히 역사로 기록됐다.

21일 서울 양재동 주택가에 파독근로자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젊은 근로자들이 독일로 떠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한 것이다.

개관식에서 50년 전 파독 근로자들의 활동 모습을 담은 기록영화가 상영되자 참석한 70∼80대 노인20여명은 눈물을 훔쳤다. 흑백 영상 속의 광부들은 탄가루로 까매진 얼굴에 눈과 이만 하얗게 드러냈다. 한복을 입고 독일 공항에 내리는 간호사들은 눈이 부시게 젊었지만 왠지 서러워보였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념관 건립은 파독 근로자의 눈물겨운 역사와 의미를 다음 세대까지 생생히 전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이들의 헌신과 노고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큰 디딤돌이 됐고 국제사회에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잠재력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치하했다.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파독 광부·간호사는 한·독관계의 핵심”이라며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광수 한국파독협회 회장은 “20∼30대 나이에 독일로 떠났던 우리들이 지금은 70∼80대가 됐다”며 “5년 넘게 정부와 민간기업을 찾아다니면서 노력한 끝에 기념관 개관으로 이어졌다”고 감회를 밝혔다.

1970년 독일에 간호조무사로 파견됐다가 40년 동안 독일 병원에서 근무했다는 문모(64·여)씨는 “파독광부 출신인 남편을 독일에서 만나서 아이들도 낳고 40여년을 살았지만 결정의 시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독일행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6개월 동안 밤마다 눈물로 지내야 했던 타국살이의 설움이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는 “그 어려운 시절을 보낸 결과로 경부고속도로가 들어서고 제철소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가슴은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기념관은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국비 25억원을 들여 4층짜리 주택을 매입한 뒤 개조한 것이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전시관으로 꾸며 광부와 간호사들이 일했던 지하 갱도와 병원의 모습을 재현했다. 수첩에 볼펜으로 눌러쓴 일기와 광부의 속옷이 당시 고된 일과를 엿보게 했다. 3층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4층은 파독근로자들의 모임을 위한 쉼터로 이용된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