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男北女’ 결합은 눈물의 씨앗?

입력 2013-05-21 18:27


2007년 남한에 온 탈북여성 김모(41)씨는 2011년 A씨를 만나 결혼하고 이듬해 아이까지 낳았다. 남한에서 평범한 가정을 일궈가던 2012년 남편이 자살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 왔다. 한걸음에 경기도 의정부의 한 모텔로 갔더니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남편이 있었다. 그런데 모텔에는 이미 다른 여자가 달려와 있었다. 남편의 오랜 내연녀였다. 사업자금이 필요하다며 김씨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자금을 가져갔던 남편은 그 돈으로 내연녀와 이중생활을 해 왔던 것이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김씨에게는 남편 대신 갚아야 할 빚 1억5000만원과 아이, 그리고 상처만 남았다.

북한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이금숙(당시 33세·여)씨는 2005년 남한에 온 뒤 중소기업 과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이 말했던 직업과 재산 규모 등은 모두 거짓이었다. 부양 능력이 없는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이씨는 매일 호프집에서 일했다. 밤늦게 귀가하는 이씨가 외도를 한다고 의심한 남편은 이씨를 때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6년 목 졸라 살해했다.

남북한 결합가정이 증가하면서 탈북여성들이 정착지원금을 노리고 접근한 남성에게 속아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조사 결과 전체 탈북자 2만여명 중 4500여명이 결혼한 상태이고, 이 중 21.2%인 950여명이 남한 배우자와 가정을 꾸렸다.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는 서울 가양동 뉴코리아교회 정형신 목사는 “남북 결합가정은 혼기를 놓쳤거나 사회적 위치가 떨어지는 남한 남자와 젊은 북한 여자로 구성된 경우가 많아 사회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남한 남성과 북한 여성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성역할이 충돌하면서 결혼 생활이 불행해지기도 한다. 2006년 탈북해 2010년에 남한 남성과 결혼한 조모(37·여)씨는 “연애할 땐 남한 드라마에 나오는 여느 남자들처럼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던 남편이 신혼 초부터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아 의외였다. 그 때문에 결혼생활에서 갈등이 많았다”고 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박정란 협력연구원은 “남한보다 더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서 억눌려 있던 탈북 여성들은 평등한 성역할을 기대해 배우자로 남한 남성을 선호하지만, 반대로 남한 남성은 북한 여성이 더 전통적이고 가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고 기대해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남북 결합가정이 겪는 문제는 다문화가정과 비슷하지만 정부의 지원 등은 기대할 수 없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여성가족부가 진행하는 ‘가족교육’과 ‘가족개인상담’ 같은 프로그램을 지원받지만 남북 결합가정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탈북 여성을 위한 교육이나 지원을 확대하고 가족지원정책을 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남북 결합가정은 작은 의미의 통일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미래의 통일 한국을 생각하며 계속 신경 써야 하는 가족 유형”이라고 강조했다.

김유나 전수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