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전쟁 치르는 중년부부, 이벤트로 극복하세요”

입력 2013-05-21 17:26


‘가정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부부. 위기에 처한 가정이 있는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결혼구조단’이 되고 싶다는 부부.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정연구소 ‘하이패밀리’를 이끌고 있는 송길원(56) 목사와 김향숙(53) 동작심리치료학회장 얘기다. 이들은 지난 2004년 ‘UN선언 세계가정의 해 10주년기념, 대한민국 대표 부부 찾기 선정위원회’가 서울시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부부’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 16일 이들을 서울 양재동 하이패밀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부부의 날’(21일)을 맞아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 잉꼬부부인 이들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을 듣기 위해서였다.

부부관계회복 프로그램 ‘행복플러스 캠프’를 통해 등 돌린 부부들도 포옹하게 만드는 ‘행복 전도사’부부들이니 알콩달콩 달콤한 얘기를 기대했는데 웬걸! 송 목사는 “우리만큼 싸운 부부도 드물 것”이라고 털어놨다. 김 회장은 “결혼 초 문화전쟁에 이어 갱년기의 호르몬 전쟁까지 2차 대전을 격렬하게 치렀다”고 덧붙였다. 신혼 때는 사소한 생활습관과 성격 등 문화 차이로 처절하게 싸우고, 40대 후반에는 남성호르몬이 많아진 김 회장은 공격적이 되고, 여성호르몬이 증가한 송 목사는 예민해져 신혼 초처럼 으르렁거리며 다퉜단다.

1984년 부산에서 신접살림을 차린 두 사람은 ‘송 성질’ ‘김 고집’으로 자기주장이 강한 데다 성격은 정반대였다. 아무리 지적해도 치약허리를 꾹 눌러 쓰고는 아무데나 놓는 김 고집을 송 성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부자리마저 네 귀퉁이를 반듯하게 맞추려 드는 송 성질을 김 고집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송 성질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고, 김 고집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힘들 수밖에 없었다. 송 목사는 “마침내 이혼하기로 한 다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부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그곳에서도 싸웠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이혼위기를 극복한 것은 부부가정사역자인 고 김인수·김수지 교수의 세미나 덕분이었다. 그곳에서 이들은 신혼 초 갈등이 이들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더구나 그 갈등의 원인이 배우자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송 목사는 무작정 아내를 고치려 했던 점을 반성했고, 김 회장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상처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1992년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지금의 하이패밀리)를 차렸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극단의 선택까지 이르게 됐던 자신들의 문화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행복한 가정 만들기’ 세미나를 시작했다. “처절하게 싸우면서 결혼생활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 주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했었다”는 송 목사는 “초보 부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예비부부나 신혼부부는 부부예비학교 등 교육기관이나 상담실을 찾아 문화적 차이는 물론 성격차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결혼생활에 조언해 줄 수 있는 멘토를 모신다면 문화전쟁을 가볍게 치르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 및 가정상담이 생소하던 때 일을 시작한 두 사람은 세속적인 명성도 얻었다. 국민일보 칼럼 연재를 시작으로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그 즈음 김 회장은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논문 준비로 미국에 1년 반쯤 가 있었다. 논문을 마치고 귀국한 김 대표는 일에 열중하기는커녕 세미나도 건성이었고, 송 목사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고, 이유 없이 화를 내곤 했다. 송 목사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며 외조까지 해서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다”고 했다. 다시 시작된 싸움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연구소를 찾아온 중년부부의 갱년기 얘기를 듣고 이들은 무릎을 쳤다. 김 대표는 “원인을 알고 나니 대처가 쉽더라”면서 덕분에 몸을 사용한 치료법인 동작치료를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호르몬 전쟁을 앞두고 있거나 겪고 있는 중년 부부들에게 송 목사는 “느슨해진 부부 사이를 촘촘하게 엮어줄 수 있는 이벤트들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앙코르 웨딩이나 혼인 갱신식 등을 통해 부 부 사이를 리뉴얼 하면 한결 가볍게 넘길 수 있다는 것. 죽음을 생각하면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지 알게 되므로 부부가 같이 유언장을 작성해보는 것도 좋다. 또, 매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푸드테라피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두 번의 큰 싸움을 치르고 나서야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이듯’ 소통하는 부부가 됐다는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비부부와 갱년기 부부의 멘토 역할을 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누리고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