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멍드는 가정 서울서만 하루 103건

입력 2013-05-20 18:02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오랜 상식은 옛말이 돼버렸다. 경찰에 접수되는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서울에서만 하루 100건이 넘는다. 술 때문에, 돈 문제로, 자녀 문제로 시작된 부부의 말다툼이 폭력사태로 비화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21일 제19회 ‘부부의 날’을 맞는다.

자영업자 김모(52)씨는 지난 7일 오전 3시30분쯤 서울 면목동 자택에서 만취 상태로 아내를 때렸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한 김씨는 아내가 택시비를 대신 내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뒤에서 폭행했다. 겁에 질린 아내는 맨발로 도망쳐 경비실에 숨었다가 중랑경찰서에 신고했다. 김씨는 가정폭력으로 세 차례 입건된 전력이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 노모(63)씨 역시 지난 1일 오후 1시50분쯤 서울 남가좌동 자택에서 술에 취해 아내를 때렸다. 얼굴을 한 대 맞고 경찰에 신고한 박씨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처벌을 원치 않는다.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도 남편을 전과자로 만드는 건 너무한 것 같아서였는데 경찰이 돌아가자 남편은 또 주먹을 들었다. 서대문경찰서는 다시 박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노씨를 입건했다.

지난 17일에는 남편(48)이 아내(44)가 입원 중인 서울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에 찾아가 “왜 나 몰래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바꿨느냐”며 폭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회사원 박모(30)씨는 지난 2일 집 명의 등 재산 문제로 다투다 아내 윤모(25)씨 얼굴을 세 차례 때려 중랑서에 입건됐다.

이처럼 부부싸움 수준을 넘어서는 가정폭력이 빈발하자 경찰은 강도나 절도처럼 체계적인 ‘관리’에 나섰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부터 112신고센터에 접수된 가정폭력 사건을 통계화하기 시작했다. 일반 폭행 사건에 포함시켜 처리해오다 별도의 분류 항목을 만들었다. 집계 결과 지난달에만 3085건의 가정폭력이 신고됐다. 하루 103건 꼴이다.

서울청은 최근 일선 경찰서에 가정폭력 대응 매뉴얼을 내려 보냈다. 여기엔 폭력 우려 가정의 경우 평소에 이웃 주민과 핫라인을 구축해 대응하고 피해자 사후 관리를 강화하라는 등의 지침이 담겼다. 또 지난 3월부터 서울 모처에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를 설치, 아내들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 임시로 머물 거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집안일’로 치부돼온 가정폭력에 적극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경찰관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가해자가 ‘왜 남의 집안일에 참견하냐’며 항의하거나, 피해자가 남편 눈치를 보면서 ‘괜찮다’고 하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정폭력은 피해자 사후 관리가 중요한데 관련 기관과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이용상 황인호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