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원의 의심 문서들, 현 정권서 밝히고 가야

입력 2013-05-20 18:58

의혹 문건 생산자와 지시자 철저히 조사하라

원세훈 원장 시절의 국가정보원이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을 만한 문건이 잇따라 폭로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대응 관련 문건과 반값 등록금에 정부가 책임이 없다는 문건을 국정원이 작성한 혐의가 짙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속 있는 대북정보는 챙기지 못하면서 정치에 기웃기웃하는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에도 조직적으로 개입해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단 혐의로 원장까지 검찰청사에 불려와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 연장선상에서 애초 축소 수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경찰청도 어제 검찰에 압수수색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으로 경찰의 핵심부서까지 신뢰가 추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검·경과 더불어 3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국정원은 이제 정치에서손을 떼야 한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 망발과 북한의 노골적인 위협이 도무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정보기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정권의 하수인이 돼 야당과 시민사회를 감시하는 구시대적인 역할은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 정권을 맡은 박근혜 대통령이 확실한 의지를 보여 과거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의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행정업무만 담당하다 자리를 옮겨 대북업무와 해외업무는 아예 손을 대지도 못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정보를 제공하는 휴민트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데도 한 해에도 몇 번씩 해외 근무자를 교체하는 바람에 정보다운 정보를 생산할 여건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에 빚이 없는 것은 물론 자신이 사찰대상자였다고 고백할 정도로 피해의식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국정원을 정치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국내 정치에 간여할 소지가 있는 부서는 없애고 오로지 대북·해외 업무에만 충실하도록 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정원의 설립 취지에도 부합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국정원이 야권인사와 좌파의 동태를 감시하고 정부 정책을 홍보한다고 해봤자 실제 효과도 미미하고 역작용만 생길 가능성이 많다. 임기 내내 쇠고기 파동과 민간인 사찰 파문 등으로 곤욕을 겪었던 이명박 정부가 이를 웅변하지 않는가. 국정원이 정치에 관한 이런저런 정보를 관리해봤자 나중에 부메랑이 돼 돌아와 부담만 가중된다.

국정원은 이번 괴문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관련자를 엄하게 문책하기 바란다. 문서 목록에 폭로된 것과 동일한 제목의 문서가 없다는 등의 번지르르한 변명으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스스로 괴문서 작성 관련자를 색출하지 않으면 검찰수사와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과거의 불미스런 일은 과감히 털어버리고 정치에는 아예 눈길도 돌리지 말기를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