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그대, 실패한 십자군이 되려는가

입력 2013-05-20 17:23


중세의 십자군 운동은 모슬렘에 의해서 점령된 예루살렘 성지를 되찾고자 하는 신앙적 열정과 의협심에서 시작되었다. 기사들은 하나님과 기독교를 위해 싸우는 것을 자신의 가장 영광스러운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게다가 교황은 십자군에 참여하는 모든 자에게 지금까지 모든 죄로부터의 면죄를 베풀어 줄 것과 영생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약속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운동에 참여하였다. 심지어는 흉악무도한 무법자들까지도 앞을 다투며 참여하였다. 그들은 모두 어깨에 헝겊으로 된 빨간 십자가를 붙이고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침내 예루살렘에 당도한다.

성경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던 성스러운 도시를 직접 눈으로 보자 그들은 스스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예루살렘 땅에 입까지 맞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십자군 운동은 결국 실패하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에서 진정한 십자군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슬람교도라면 백성들까지 닥치는 대로 모두 학살하였고 잔혹한 일들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다음 참회하고 시편을 읽으면서 맨발로 그리스도의 무덤까지 순례를 한 것이다. 이런 종교적인 모습이 아랍 사람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었고 십자군을 향해 등을 돌리고 만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계속되는 십자군 행진에 엄청난 자연 재해가 방해를 하여 1차 원정 이후에 모든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지 100년 후에 십자군은 다시 예루살렘을 모슬렘에게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실패가 있다. 100여 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의 제국을 건설하여 통치하는 동안 오히려 십자군이 아랍인들의 문화와 건축, 그들의 심미적 감각과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아랍 사람들이 연구해 놓은 그리스 철학과 문화 등을 접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더 읽혀지고 연구되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기독교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던 르네상스(문예부흥)를 일으키게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십자군은 초심을 빼앗겼고 본질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즉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특정한 땅, 혹은 성묘라고 하는 특정한 장소를 숭상하는 잘못된 맹목적 신앙으로 전락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는 성묘가 있었지만 그 무덤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맹목적 신앙으로 인해 영주와 기사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달리했고 자기들끼리 기득권 싸움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그들은 본질을 잃어버린 채 아랍 문화에 심취하게 되었고 그것이 문예부흥을 일으켰으며 그것으로 인해 기독교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본질, 그 자체를 잃어버리고 맹목적인 개혁 운동을 하고 있는 십자군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본질 그 자체가 목적되지 않는 개혁은 반드시 방향성을 상실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개혁은 전체를 실패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대는 지금 무엇을 목적으로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가. 그대 역시 목적이 본질이 아닌, 방향성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정의감과 열정으로만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패한 십자군이 되려는가. 본질을 붙잡아라. 기득권을 내려놓고 방향성을 다시 찾아라. 십자군 운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