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공약가계부 ‘SOC 딜레마’

입력 2013-05-19 18:04


박근혜정부가 ‘공약가계부 딜레마’에 빠졌다. 135조원에 이르는 복지공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나라살림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지방사업 공약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정부는 강력한 세출구조조정 방안의 하나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대폭 깎기로 했다. 하지만 SOC 예산 삭감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 약속했던 지방공약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SOC와 산업 분야는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투자가 확대됐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박 대통령 임기 내에 도로나 철도, 항만 등 대규모 국책사업 예산을 10조∼15조원 절감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9일 “기본적으로 SOC나 산업 관련 분야는 예산을 줄인다는 방침이어서 지방공약도 우선순위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예비 타당성 조사를 거쳐 신규 사업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세출구조조정을 강조하는 것은 경기침체로 세입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복지재원 135조원 가운데 세출구조조정으로 충당할 금액을 당초 목표했던 82조원보다 늘어난 85조원으로 잡았다.

문제는 정부의 ‘씀씀이 조정’이 박 대통령의 지방공약 이행에 ‘빨간불’을 켠다는 데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시·도별 맞춤형 공약 105개를 내걸었다. 박 대통령은 재정전략회의에서도 가능한 지방공약 이행안 마련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은 철도·공항·항만 건설 등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는 SOC 사업이다. 총 사업비 13조원 규모의 수도권광역철도(GTX)를 비롯해 호남선(광주 송정∼전남 목포) KTX, 경북 김천∼경남 거제 내륙철도 건설 등 지역 현안이 대거 포함돼 있다.

정부가 SOC 예산에 칼을 대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하면서 이들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10조원 규모의 동남권 신공항, 전북 부안∼고창 부창대교 건설 등 대규모 토목사업은 앞날이 불투명하다.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지역 민심을 얻었던 공약이 만만치 않다는 결론이다.

SOC 예산 삭감 방침은 이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예상됐다. 당시 인수위는 지방공약의 경우 기본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혀 비난을 받았다. 정부가 직접 증세 없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정부가 지방공약 이행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해당지역의 반발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방만하게 운영하는 사업은 줄이는 게 맞지만 전력·물류 분야와 같이 지역 경제성장이나 성장동력 확충에 꼭 필요한 SOC 사업도 있다”며 “정부가 세출구조조정을 하면서도 지역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SOC 사업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