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수학 접목한 수업 방식 학업 성취도 눈에 띄게 쑥쑥

입력 2013-05-19 17:47


“시계의 시침과 분침으로 정확하게 120도를 만드시오.”(컴퓨터 게임)

“11시가 30도니까 4시로 만들면 되는 건가? 8시도 맞네.”(초등학생들)

“성공! 다음 단계로.”(컴퓨터 게임)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효원초등학교. 칠판대신 대형 모니터가 설치된 ‘스마트 교실’에는 4학년 학생 30명이 6개조로 모여 앉아 ‘각도 이해하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개별 지급된 태블릿PC의 스크린에 떠 있는 시계의 분침과 시침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각도를 계산했다. 학생들에게 친숙한 컴퓨터 게임과 일상 속 벽시계가 딱딱한 수학 수업에 녹아 있었다.

앞서 수업 시작과 함께 교사가 개념을 설명했다. 교사는 벽에 걸려있던 시계를 떼어 내 11시로 맞추고 “시계에 쓰인 숫자가 모두 12개이고 전체는 360도이니까 이를 12로 나누면 30이 됩니다. 숫자 사이 각도는 30도이며 따라서 11시는 30도입니다.” 교사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나머지는 태블릿PC와 학생들 몫이었다.

게임이 가진 흡인력은 강력했다. 학생들은 게임이 요구하는 다양한 문제를 풀며 의문이 생기면 지체 없이 태블릿PC를 들고 교사에게 뛰어나갔다. 교사가 다른 학생 때문에 바쁘면 옆 학생과 상의하기도 했다. 각도계산 게임은 난이도별로 5단계로 돼 있으며 모두 통과하면 소요 시간과 정확도를 반영한 총점이 산출된다.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모바일 게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팡’처럼 동료 간 점수 경쟁이 흥미를 유발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는 학생들이 서로의 점수를 물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임의 여운은 쉬는 시간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이날 수업에서는 개인별 시간차는 있었지만 30명 전원이 5개 단계를 완수했다.

◇“수학 시간이 기다려진다”=이 학교는 올해부터 게임과 수학을 접목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학 게임 콘텐츠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제공받는다. 각도 이해하기 바로 전에는 곱셈 수업이 있었다. ‘458×569’와 같은 곱셈 문제가 스크린에 떠다니면 학생들이 계산해 정답이 적힌 풍선을 골라 가져오는 방식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고무돼 있었다.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정아(38·여) 교사는 “처음에는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지금 생각은 다르다”며 “확실히 아이들의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왜 이해를 못할까’라는 와이(Why)를 주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라는 하우(How)를 주로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뒤처진 학생들이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학생들이 아닌 교수법에서 문제점을 찾아봐야 한다는 성찰의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신찬호(11)군은 “원래 수학은 조금 싫었다. (게임으로 해보니) 이제 재밌어졌다. 수학 수업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신군은 수학게임 시간이 되면 스마트교실 열쇠를 받아들고 가장 먼저 뛰어가 수학게임을 한다”며 웃었다.

특히 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이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학습목표를 이행하지 못한 아이들을 방과 후에 남겨 개별 지도를 한다. 과거에는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남지 않으려 했지만 게임 방식이 도입된 후로는 스스로 남아 수업시간에 완수하지 못한 게임 미션을 완수한 뒤 집에 간다.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풀기 위해서는 원리를 확실하게 이해해야 하므로 교사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아직 걸음마 단계, 게임은 ‘마중물’일 뿐=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수학이나 과학 게임 콘텐츠는 여전히 초보 수준이다. 먼저 학생들이 좋아하는 일반 상업용 게임과 비교하면 시각적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비주얼을 강조하는 청소년들의 이목을 사로 잡기 위해서 학습용 게임 콘텐츠가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다. 개발된 게임의 학습 영역도 제한적이어서 아직까지 초등학교 수학 영역도 전부 다루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학교 수준 이상은 개발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모든 수학문제를 게임화하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흥미를 끌어오는 ‘마중물’로는 적합하지만 모든 교육을 게임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잡한 미분과 적분을 게임으로 풀어 만드는 것은 실익이 없어 보인다. 게임도 칠판에 쓰면서 설명하는 방식, 교보재를 직접 만지거나, 아예 학교 밖으로 나가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교사·학생이 소통하는 등 다양한 방식 가운데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진우 효원초 교장은 “다양한 접근법으로 아이들 흥미를 자극할 수 있어야 공교육이 살아난다”면서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해 현장 교육 전문가이자 제자들의 수준과 특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교사들이 가르치는 방식·수단을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유연하게 교육과정과 평가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