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불안함에 흔들리는… 10대를 위로하다
입력 2013-05-19 17:19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 3편
인생에서 그토록 불안한 때, 사소한 것에도 흔들릴 때, 세상 어딘가로 뛰쳐나가고 싶은 갈망이 생생할 때. 그 이름 ‘청소년’. 연극계의 맏형격인 국립극단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연극 세 편을 내놓았다.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과 소극장 판에서 공연되는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다. 지난 시즌 연극계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은 국립극단 화제작 ‘소년이 그랬다’ ‘빨간 버스’ ‘레슬링 시즌’ 등 세 편이 더 풍성한 옷을 입었다.
◇거침없는 속도감 ‘소년이 그랬다’=두 소년이 있다. 중학생 민재와 상식은 그날도 시시껄렁한 장난을 하면서 육교 위를 올랐다. 볼품없는 돌을 아무렇지 않게 장난삼아 던졌다. 그냥 그랬을 뿐이다.
두 형사가 있다. 광해와 정도는 오토바이 폭주 청소년을 따라 다니며 그날도 어김없이 육교 위를 찾았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트럭 운전사가 숨지게 되고 두 소년과 두 형사는 만나게 된다. 생애 처음 겪는 불안과 갈등, 이들은 세상의 여러 시선과 직면하게 된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 첫 번째 작품인 ‘소년이 그랬다’는 호주 극작가 톰 라이코스·스테포 난추의 원작 ‘더 스톤즈(The Stones)’를 각색한 작품. 호주에서 청소년들이 고속도로에서 던진 돌에 트럭 운전사가 숨진 실화를 극화했다. 1996년 초연 이후 전 세계 20개국 공연장에서 1000회 이상 공연됐으며, 국내에는 2011년 초연됐다. 원작을 한국 현실에 맞게 요즘 청소년의 언어로 재창작했다. ‘2012 한국연극 베스트7’에 선정되는 등 많은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다.
이 연극의 감상 포인트는 소년이 형사가 되고, 형사가 소년이 되는 1인2역 배우의 연기다. 두 배우는 같은 옷에 점퍼의 지퍼를 내리고(형사) 올리는(소년) 것만으로 순식간에 형사와 소년을 오간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내달린다. 거침없는 속도감이 공연 내내 긴장감을 더한다. 배우의 재능과 넘치는 에너지가 눈길을 끈다.
텅 빈 공간에 작은 소품 몇 개로 무대는 놀이터가 되고 공사장이 되며 소년들의 아지트가 된다. 소년들의 예민한 감성을 담은 전자 기타와 타악 라이브 연주, 엎치락뒤치락 소년의 심리를 따라가는 흔들리는 조명도 돋보인다.
배우들의 소년과 형사로의 변신을 놀이처럼 즐기던 관객은 극의 후반부, 잊고 있었던 현실을 마주한다. 이 상황이 내 얘기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아버지 또는 남편이, 아이가 장난삼아 던진 돌에 맞아 사망했다면 이를 용서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 아이가 놀다가 돌을 던져 사람이 죽었다면 그저 장난이었다고 법의 선처를 호소할 수 있을까. 판소리 ‘사천가’ ‘억척가’로 주목받은 남인우가 연출을 맡았고, 이철희 김정훈이 열연한다. 25일까지.
◇‘빨간 버스’와 ‘레슬링 시즌’=두 번째 무대 ‘빨간 버스’는 중견 연출가 박근형이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고생 세진이 주인공. ‘찌질한’ 어른을 닮지 않은 세진은 당당하고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천연덕스러운 블랙유머와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25일∼6월 1일.
세 번째 무대 ‘레슬링 시즌’은 레슬링과 청소년을 결합한 작품. 막이 오르면 부저가 울리고 레슬링 경기가 시작된다. 8명의 고등학생과 1명의 심판. 지름 9m의 원형 매트 위에서 매 라운드 왕따, 소문, 폭력, 사랑, 정체성 등의 문제와 겨룬다. 경기장을 옮겨놓은 삼면 무대에 레슬링의 역동성에 기반한 독특한 움직임, 경쾌한 랩이 어우러진다. 공연 후 관객이 배우의 상황에 대해 토론을 하는 포럼도 준비돼 있다. 미국 작가 로리 브룩스 작, 서충식 연출. 6월 1∼9일. 각 작품 1만∼3만원(1544-1555).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