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목적에 사로잡힌 인생

입력 2013-05-19 17:21


새들백 교회의 릭 워런 목사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말할 때, 주저 없이 그의 아버지를 말한다. 그의 부친은 2년 정도의 암 투병을 한 후에 임종을 맞았는데, 그가 아버지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예수님을 위해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해!” 그의 부친은 한 시간 동안 이 말을 100번 정도 반복했다고 한다.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고백을 들으면서 릭 워런 목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아버지를 가지게 된 것을 무한히 자랑스러워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고백한다. 릭 워런 목사의 부친은 실로 목적에 사로잡힌 인생이었다. 목적에 사로잡힌 인생이 멋지지 않은가?

좀 더 엄밀하게 구분해보자. 누군가가 인생의 목적을 ‘알고 있다’는 것과 인생의 목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 백성은 인생의 목적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라고 해서 모두 다 똑같은 종류의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목적을 ‘아는’ 것과 목적에 ‘사로잡힌’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목적을 ‘아는’ 삶이 아니라, ‘사로잡힌’ 삶이었다. 우리가 요셉의 인생을 생각하면, 그는 목적을 ‘아는’ 인생이라기보다는, 목적에 ‘사로잡힌’ 인생이었다. 요셉의 생애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해골을 가나안땅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고향으로 유골을 보내달라는 유언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도 그를 사로잡고 있는 목적, 즉 ‘하나님나라’에 사로잡힌 한 인생의 자기표현이다. 그가 무엇을 위해 살았고, 지금도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무엇에 사로잡혀 살아야 하는지, 그것을 천명한 위대한 고백이었다. 요셉은 그의 인생 목적, 즉 하나님나라에 사로잡힌 인생이었다. 그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도, 고통의 세월을 보낼 때에도,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 있다. 그것이 그의 인생 목적이었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였다.

큰 목적에 사로잡힌 사람은 집착이 없다. 그는 매몰되지 않는다. 왜 명품에 집착할까? 왜 자식을 사랑하기보다 집착하는 것일까? 왜 소소한 일상에 매몰되는 것일까? 인생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목적이 있어도 그 목적이 그를 ‘사로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자 이무석 교수는 열등감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생 목적이 바로 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한 사람의 인생 품격을 결정짓는 요인은 그 인생을 이끄는 목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목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한 공직자의 비행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불현듯 다시금 인생의 근본을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너는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는가? 아니, 지금도 그 목적에 분명히 사로잡혀 있는가?’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