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갈색 회화, 거친 나무조각의 ‘절묘한 어울림’

입력 2013-05-19 17:12


파주 백순실미술관 개관전 ‘토포필리아’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최근 개관한 백순실미술관(BBSM)은 수령이 100년 된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외관 벽면을 뚫고 나온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물을 지을 때 이 나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 베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미술관의 아이콘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색 콘크리트 벽면에 봄의 새싹을 틔워내는 이 나무는 헤이리의 명물로 떴다.

백순실미술관이 개관을 기념해 ‘토포필리아(topophilia): 장소의 시학’을 8월 11일까지 연다. 서울대 회화과를 나와 차 그림을 그리는 백순실(62) 작가의 ‘동다송(東茶頌)’과 중앙대 조소과를 나와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나무 조각을 만드는 나점수(44) 작가의 ‘향(向)’ 등 20여점을 전시한다. 백 작가의 짙은 갈색 회화와 나 작가의 거칠게 깎은 나무 조각이 잘 어우러졌다.

전시명으로 쓰인 ‘토포필리아’는 환경에 대한 정서적 유대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와는 좀 다른 시각으로 현대미술을 여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자연환경을 작업의 소재로 다뤄온 두 작가의 작품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시간을 갖고 공간과 예술을 음미하면서 마음의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한다.

매일 마시는 찻잎과 커피 찌꺼기를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그림 재료로 삼는 백 작가의 ‘동다송’에서는 흙냄새가 난다. 숱한 붓질과 오랜 시간의 열정이 은은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작업을 하는 동안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작가는 명곡의 감동을 그림 속에 살려낸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나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굵은 기둥의 나무를 거칠게 깎은 나 작가의 조각은 전시장에 서 있거나 누워 있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기보다 그냥 하염없이 세월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15년 전에 수집해 작업실에 두고 있다가 이번에 작품으로 다듬은 것도 있다. ‘식물의 사유’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한 작가는 관람객들이 이를 통해 생명체에 대한 감성을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무채색 추상이다. 의미를 구체적으로 풀어내기보다 응축시키는 작품이다. 나 작가의 조각은 서늘함 같은 것이 있다면, 백 작가의 회화는 따뜻한 분위기를 풍긴다. 서로 다르면서도 동질감을 가진 두 작가의 작품이 조화를 이룬다. 두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는 공간과 각각의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을 따로 두었다.

미술관은 앞으로 어린이들의 창의력을 일깨우기 위한 감성 통합 프로그램 ‘미술관 속 큰 나무’를 진행할 계획이다. 예술을 통해 가족 간 소통의 장을 모색하는 ‘큰 나무 가족 프로그램’, 어린이들을 위한 아카데미 교실 ‘큰 나무 워크숍 포 키즈’,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미술관에서 즐기는 ‘소풍 프로그램’ 등이 마련된다(031-944-63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