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카자흐스탄의 한인 망명자들
입력 2013-05-19 18:51
1937년 9월 스탈린의 강제이주명령을 전후해 소련 전 지역에서는 한인 사회 엘리트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어났다. 한인 지도자들에게 ‘일본 정탐’ 혹은 ‘반혁명 활동’ 혐의를 씌워 처형을 자행하고 있던 상황에서 과거 혁명 활동이나 빨치산 활동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최근 출간된 450여 쪽 분량의 ‘망명자의 수기(이인섭 지음·반병률 엮음/한울아카데미)는 스탈린 시대의 가혹한 상황에서도 기록을 남기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한 혁명가의 피땀 어린 작업의 결과물이다.
항일혁명가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이인섭(1888∼1982)의 일대기는 한국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5개국을 넘나들지만 그가 ‘망명자의 수기’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더욱 극적이다. “1939년 여름이었다. (중략) 필자가 당시 거주하던 도시 크질오르다 한 구석에는 단지 조선사람이라고는 최게립, 게봉우 세 집이 채레채레(차례차례) 살며 서로 동정하며 채매이지(채소농사)를 하여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게립(최계립)은 1920년 조선은행 회령지점으로부터 북간도의 용정지점으로 운송 중이던 일화 15만원을 탈취한 최봉설(1897∼1973)의 다른 이름이며, 게봉우(계봉우·1880∼1959)는 북간도에서 발행되던 월간지 ‘대진’의 주필을 역임한 역사학자이자 훗날 ‘뒤바보’라는 한글 필명을 사용한 이주세대 최고의 지식인이다. 세 사람은 우연히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바이투르시노프 거리에 나란히 거주했는데, 이인섭은 147번지, 최봉설은 149번지, 계봉우는 151번지였다.
이인섭은 1939년 계봉우의 권고로 수기 집필에 들어가 1961년에야 탈고했다. 무려 20여 년이나 걸린 것은 당시 소련 각처에 생존한 수많은 동지들을 직접 찾아가 증언을 듣거나 서신을 주고받는 등 실증 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망명자의 수기’는 자서전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이인섭 개인의 이야기로 읽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