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캄보디아 김현태 선교사] (6) 캄보디아 학생들과 고국 방문

입력 2013-05-19 17:27


한국에 비전트립 온 학생들, 예배당 메운 성도 보고 ‘깜짝’

도시나 시골에서나 젊은 캄보디아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들에게 꿈을 발견하기 어려워 종종 답답함을 느낍니다. 저는 젊은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된 김준곤 목사님으로부터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꿈을 민족복음화의 꿈으로 키워갔습니다. 캄보디아 학생들은 개인과 가족이 민족이나 국가라는 의식보다 우선순위에 놓여 있어 복음으로 민족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은 잘하지 못합니다.

캄보디아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민족복음화의 꿈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의 비전트립을 준비했습니다. 암울한 현실에 갇혀 꿈을 꾸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한국의 모습을 통해 미래의 캄보디아를 그려보기를 소망하며 준비했습니다.

비전트립 계획을 세우면서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두 가지 변화를 기대했습니다. 하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미래의 캄보디아 교회를 꿈꾸고, 민족복음화의 꿈을 만들어 가는 변화입니다. 두 번째는 가르친 학생들이 모두 의대생들이라 한국의 의료 환경과 수준을 보며 캄보디아 의료계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서의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두고 후원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 방문과 한국 성도의 가정을 경험하는 홈스테이, 병원 방문을 통한 참관 실습을 중심으로 한국 방문 계획을 만들었습니다.

준비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2주간의 방문 기간에 드는 경비를 마련하는 것부터 한국 방문 비자를 받는 것, 그리고 학교 결석이 되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하는 것과 방문 교회와 병원을 섭외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비전트립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난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번 비전트립을 인도하시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특히 학교 결석 문제로 우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 상황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희는 학교 수업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캄보디아 명절연휴 기간을 방문 일정으로 잡았습니다. 원래는 1주 정도의 휴가와 며칠만 결석하는 것으로 일정을 정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올해는 2주간의 명절 휴가가 주어져 모두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실습하는 한 병원에서 3일만 휴가를 하고 나머지는 반드시 병원 실습을 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학생들은 보통 명절 때면 대부분 고향을 방문합니다. 명절연휴는 대목이라 버스비도 2∼3배 오릅니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들은 명절을 전후로 조금 일찍 가서 조금 늦게 옵니다. 이로 인해 약 10일의 휴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3일만 쉰다고 하면 학생들은 결석할 수밖에 없고, 결석을 한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치르지 못하게 돼 결국 교수에게 뇌물을 주고 시험을 치르게 되곤 합니다. 뇌물을 받아 보려는 의사의 속셈이 훤히 보였고, 이는 캄보디아인이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보편적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 팀원 가운데 2명이 이 병원 실습을 하기 때문에 비전트립 참가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주지 않고 비전트립을 갈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은 채 출발 3일 전이 되었습니다. 논의 끝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뒷돈을 주는 것에 동의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해 주셨는데, 게다가 비행기 표도 끊었는데 이제 와서 2명이 못 간다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뒷돈도 30달러 정도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선교사인데 어떻게 적극적으로 동의하겠습니까.

두 명의 학생 가운데 한 학생은 뒷돈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을 따로 불러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록꾸루(선생님), 우리는 이 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비전트립을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병원의 허락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뒷돈을 주고 허락받을 거라면 뭣하러 기도했습니까? 그냥 돈 주고 가면 되는데… 다른 친구는 돈을 주고 허락을 받고 가더라도 그 친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캄보디아의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한국에 가는 것이 너무 좋은 기회이고, 록꾸루가 수고를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뒷돈을 주고는 가지 않겠습니다. 만약 허락을 못 받으면 저는 안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학생을 들어 저를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상황을 바꿔 주셔서 출발 이틀 전에 허락을 받고 모두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부정한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비전트립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한국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감탄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예배당을 가득 메운 성도들과 젊은 한국인 친구들과의 만남은 이들에게 도전이고 꿈이었습니다. ‘캄보디아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리 학생들의 의심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한국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우리도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확신과 꿈으로 바뀌었습니다.

민족복음화에 대한 소망을 만들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나는 한국 성도들은 캄보디아에서 온 기독 청년들을 보며 마치 바울의 마케도니아 환상처럼 ‘캄보디아 환상’을 보고, 캄보디아를 위해 더 기도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또한 한국 병원의 수준 높은 의료시설이나 환경들을 자랑스럽게 학생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오히려 학생들은 시설이나 기술이 아닌 의료진의 태도에 더 감동을 받았습니다. 병원 참관 실습을 통해 학생들은 하나같이 “캄보디아 의사들은 매우 권위적이라 환자를 존중하지 않는데, 한국 의사들은 어떻게 환자들을 그렇게 존중하며, 친절하게 대하는가? 의사와 간호사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들 한명 한명의 태도가 바뀐다면 미래의 캄보디아도 변화될 것”이라고 서로 나누며 기도했습니다.

서울의 양화진도 방문했습니다. 한국이 복음의 불모지였을 때 한국 땅을 밟고 순교한 수많은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캄보디아에서 수고하는 많은 선교사의 삶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저에게 “록꾸루도 캄보디아에서 죽을 때까지 있을 건가? 만약 캄보디아에서 죽는다면 캄보디아에도 양화진을 만들겠다”는 농담도 주고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번 비전트립 준비 과정에서 이미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셨습니다. 한국 방문은 어쩌면 덤으로 주신 은혜 같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무사히 캄보디아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과 비전을 가슴에 간직한 채….

귀국(?) 후 에피소드 하나를 나눕니다. 저는 비전트립 이후 캄보디아로 돌아오자마자 몸살과 감기로 앓아누웠습니다. 아내는 저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양식을 해 주겠다며 저에게 “삼계탕과 오리백숙 등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머쭈 끄릉’(캄보디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한국의 된장찌개와 비슷한 음식)과 ‘차끄다우 쌋꼬’(캄보디아식 고기 야채 볶음)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바라보더니 “이제 캄보디아 사람 다 됐네”라며 웃었습니다. 그 말이 너무 듣기 좋았습니다.

김현태 (CCC 의대 담당 간사·헤브론 선교 병원 외과 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