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빵집보다 흔한게 조합은행… 지역경제 주도적 역할

입력 2013-05-19 17:22


獨 협동조합은행 운영 방식과 실태

“우리는 도이체방크와는 다릅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DZ방크 본사에서 만난 프랑크 슈펠링(Frank Sperling) 이머징마켓 총괄책임자가 인터뷰에서 처음 건넨 말이다. 도이체방크는 독일 최대 상업은행이며, DZ방크는 독일 협동조합은행의 수익 개발 및 마케팅 전략 등을 총괄 수립하는 상위 기구다. 협동조합은행은 고객이 곧 주주다. 독일의 협동조합은행이 도이체방크와 차별화되는 이유다.

슈펠링 총괄책임자는 “우리는 고객에게 수익을 돌려주고, 고객은 우리에게 비즈니스를 준다”면서 “이것이 우리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이체방크는 주주와 고객의 입장이 다르다”며 “그들은 주주 이익을 위해 고객을 대상으로 수익 극대화에 힘을 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주요 은행들은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매달리고 있는 추세다. 이전부터 고객 보호는 뒷전이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금융권의 탐욕을 비판하는 ‘월가(街)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독일의 협동조합은행이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웠던 이유다.

독일의 협동조합은행은 크게 두 가지로 시작됐다. 농촌에서 농민을 대상으로 1862년에 설립된 라이파이젠은행(Raiffeisenbank)과 도시지역에서 상인들을 대상으로 1850년 설립된 시민은행(Volksbanken)이 있었다. 출발은 달랐지만 경제 성장으로 도농 간 격차가 줄어들면서 각자의 이름만 살린 채 두 은행은 합병됐다.

독일의 협동조합은행은 모두 1101개에 달한다. 상업은행(275개)이나 저축은행(423개)보다 월등히 많다. 슈펠링 총괄책임자는 “독일 어느 지역을 가든 빵집만큼 흔하게 보이는 게 협동조합은행”이라고 말했다. 전체 자산규모도 지난해 말 기준 9975억 유로(중앙회 포함)로 대형은행(1조2342억 유로)의 80.8%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여신 16.7%, 수신 17.4%, 수수료 사업의 14.4%, 주택예금의 27.6% 등을 차지한다. 조합원은 모두 1740만명이며 고객 수는 3000만명, 지점은 1만3211개나 갖고 있다. 개별 은행의 평균 자산은 1991년 1억 유로에서 지난해 말에는 6억7900만 유로로 늘어났다.

비은행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은행도 조합원 3명만 있으면 설립할 수 있다. 다만 600만 유로(약 86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하다.

이런 협동조합은행은 지역의 균형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00년대 중반까지는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동일성의 원칙’을 지켰지만 이후에는 비조합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주로 지역의 중소기업 및 가계를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슈펠링 총괄책임자는 “일반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은행에도 가입하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 때 대형은행에 비해 오히려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2008년 기준 자금조달 과정에서 가계·기업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차지하는 반면 채권발행 비중은 단 5%에 불과할 정도로 자본시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자금운용 역시 가계대출이 35%, 기업여신이 35%로 비등하다.

DZ방크는 보험, 부동산, 투자은행(IB)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슈펠링 총괄책임자는 “단위 은행들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가 보유한 자회사들은 모두 단위 은행들의 고객 서비스에 활용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행에는 4가지 원칙이 있다. 정체성의 원칙, 민주주의의 원칙, 지역주의의 원칙 그리고 보충성의 원칙이다. 은행이긴 하지만 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1인 1표의 민주주의를 지키며, 지역에 기반을 두고 영업을 하고, 개별 은행이 역부족인 사업은 상위 기구가 맡아서 수행한다는 뜻이다. 슈펠링 총괄책임자는 “협동조합은행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조합원과 밀착돼 있지만 이와 동시에 국제적 금융네트워크의 일원이기도 하다”면서 “현재의 금융위기가 결국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고 볼 때, 우리는 한발 비켜서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글·사진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