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정책 사각지대, 民이 관장… 풀뿌리 협동조합 천국
입력 2013-05-19 17:54
2010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작은 협동조합이 하나 출범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재학생들이 대학 창립 625주년을 기념해 만든 HEG하이델베르크 에너지협동조합이다. 이 협동조합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지붕에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 지역 주민들에게 값싼 전기를 공급한다. 지난 1월에는 누슬로흐(Nussloch) 지역 임대주택에 발전소 설치 계약을 하는 등 지금까지 4개 발전소에서 약 190㎾p(㎾peak·순간 최대전력)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금융·농업·산업·소비자·주택 부문 등에서 수많은 협동조합이 운영되는 독일은 ‘협동조합의 천국’이다. 특히 최근에는 에너지협동조합 열풍이 불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로 정부가 2022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하겠다고 밝히면서 급증세다. 지난 3월 25일 독일 베를린 독일라이파이젠협회(DRV·농협연합회) 본사에서 만난 마린 커란(Mareen Curran) 미디어 담당관은 “최근 3년간 전국적으로 무려 300여개의 에너지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면서 “3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설립 조건이 간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EG가 실험적인 협동조합이라면 2006년 건립된 태양·시민협동조합(Solargeno)은 시민과 전문가가 만든 전문적인 에너지 협동조합 중 하나다. 이들은 2008년 소방서에 11㎾p, 2009년 학교에 26㎾p, 2011년 공장에 552㎾p의 발전소를 설치하는 등 매년 다양한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이 회사가 매년 생산하는 전력은 5만㎾h(전력량)에 달한다. 발전소를 건립하는 기금은 협동조합의 지분과 조합원 대출을 통해 마련된다. 최근에는 전기를 생산할 때 나는 열로 난방까지 할 수 있는 차세대 발전소인 ‘블럭난방발전소(BHKW)’를 만드는 사업도 시작했다. 전기료도 전력회사에서 파는 경우 ㎾h당 25센트지만 개인 생산 전력은 15∼18센트에 불과하다.
2011년 9월 15일 사상 초유의 전국 강제 순환정전사태를 겪었던 한국. 당시 정부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위기에 몰리자 극약처방을 내렸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독일처럼 소규모의 지역 에너지협동조합이 자발적으로 조직돼 시청 건물이나 골프연습장, 대학 건물 등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소가 지어졌다면 블랙아웃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베를린=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