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명무실 위기 김영란법, 원안대로 입법하라

입력 2013-05-17 18:11

국민권익위원회의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김영란법)’이 정부 부처간 조율과정에서 실효성 없는 법으로 변질됐다. 공직자 부정부패를 근절할 획기적 법안이라는 평가 속에 지난해 8월 입법예고 됐으나 공직사회의 반발로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내용마저 크게 바뀌어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당 김영주 의원은 권익위가 법무부에 보낸 김영란법의 최종 수정안을 확인한 결과 공직자의 금품수수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내용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직무관련성 여부와 관계없이 금품을 받은 공직자를 처벌토록 하는 조항도 소속·산하기관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서 돈을 받은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크게 후퇴했다. 권익위는 이달 중 법안을 확정해 다음달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지만 수정안대로라면 공직사회의 비리와 부패를 근절하겠다는 당초 입법 취지를 조금도 살릴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의 공직자 부패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별부패인식지수(CPI)의 경우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직급과 업무를 막론하고 ‘떡값’ 명목의 크고 작은 금품수수가 만연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스폰서 검사’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이른바 권력기관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이 일상적인 친분관계를 핑계로 돈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금품을 받은 공직자가 적발돼도 직무연관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김영란법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대가 없는 금품수수는 없다’는 상식을 공직자들에게 각인시켜 부패의 고리를 끊어낼 법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권익위는 기득권을 가진 일부 공직자들의 반발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며 구색만 맞추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권익위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지난해 8월 입법예고했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