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거목을 잃다… 여성운동계 代母 박영숙 전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 별세

입력 2013-05-17 18:02 수정 2013-05-17 22:30

여성운동계의 대모(代母)인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17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故) 박 전 대행은 1932년 평양 태생으로 19세 때 월남해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여성·시민운동계에 투신, 한국 기독교여성청년회(YWCA)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며 평생 여성 권한을 향상시키는 데 힘썼다. 지난 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은 박 전 대행의 인생에 큰 전기가 됐다. 당시 성고문사건대책 여성단체연합회장을 맡은 박 전 대행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으로 87년 정계에 입문했고, 이듬해 총선에서 전국구 1번으로 13대 국회의원이 됐다. 평민당에서 부총재까지 맡았고 93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국회의원으로서 여성이 친권자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한 가족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탁아법 제정 등에 기여했다.

90년대 환경운동에도 뛰어들어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거쳐 김대중정부에서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고, 2011년에는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릿지 두런두런’을 창립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아 무소속 안 의원이 대학교수에서 대선 예비후보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진보적인 신학자 고(故) 안병무 선생과의 사이에 외아들을 뒀다.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방문하던 중 박 전 대행의 타계 소식을 듣고는 “참으로 안타깝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전했다. 이 여사가 10살이 많지만 두 사람은 한국 사회 초기 여성운동을 함께한 동지적 관계였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보수·진보를 아울렀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대선에서 내세운 여성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을 한결같이 품어준 드넓은 품성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안 의원도 별세 소식에 “거목을 잃었다. 그 슬픔이 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02-2227-7550)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