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의 슬픈 아이들] ③ 케빈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의 희망歌
입력 2013-05-17 17:57 수정 2013-05-17 19:29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이젠 학교 오면 웃음 나와요”
제네즈(16)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어제는 비가 와서 학교에도 오지 못했고, 오늘 아침에는 진흙탕을 40분 동안 헤매며 힘들게 등교했지만 학교만 오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지난달 25일 아이티 산악지대 마욘의 케빈학교에서 만난 제네즈의 얼굴에는 구김살이 없었다. 깨끗하게 차려 입은 초록색 교복이 잘 어울렸다. “학교의 하얀 벽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씩씩하게 말하는 제네즈의 까만 얼굴에 카리브제도의 뜨거운 햇볕이 쏟아졌다. 학교를 둘러싼 숲의 나무들도 그 미소에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제네즈가 다니던 마일롯 초등학교는 원래 지붕이 없었다. 양철을 이어 붙여 벽만 겨우 올리고 지붕 대신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놓았던 학교는 3년 전 아이티에 닥친 대지진 때 힘없이 무너졌다. 제네즈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오빠와 둘이 살던 집도 무너졌다. 마을 전체가 엉망이 됐다. “온 세상이 흔들렸어요. 깜짝 놀랐어요. 엄청 무서웠죠. 그때 오빠도 다쳤어요.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대요. 그 뒤로는 오빠가 일을 할 수 없게 됐어요.”
엄마는 제네즈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숨졌다. 아버지도 떠났다. 빨래도 청소도 요리도 어릴 적부터 제네즈 혼자 다 감당했다. 학교는 제네즈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지진으로 학교도 무너지고 오빠도 다쳤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았다고 했다. 겨우 13살이었던 제네즈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현실이었다. 이웃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겨우 굶어죽지만 않았다고 한다. 무너진 집 한구석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엄마를 아빠를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그때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인들이 무너진 학교를 다시 세워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낭떠러지 길을 한참 구비 돌아 와야 하는 숲 속 산골마을까지 트럭이 올라오고 사람들이 오갔다. 밝은 피부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친구들의 머리도 깎아주고, 깨끗한 옷도 선물해 주었다. 마을 주민들과 같이 벽돌을 쌓으며 학교를 세웠다.
마침내 지난해 2월, 지진으로 학교가 무너진 지 2년 만에 학교 건물이 다시 세워졌다. 콘크리트 벽에 하얀색과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건물이었다. 지진이 다시 난다 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다. 학교 이름은 케빈이라 불렀다. 건물을 새로 짓는 데 앞장선 한국인 아저씨의 숨진 아들 이름이라고 했다. 마르실루스 교장선생님은 “잃어버린 아들을 대신해 멀리 지구 반대편 우리 마을 아이들을 도와준 고마운 뜻을 마을 사람들 모두 잘 알고 있고 무척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6개 교실은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지진 이전에는 책걸상도 없었는데, 이젠 단단한 바닥을 가진 교실에서 깨끗한 책걸상에 앉아 칠판을 보며 공부한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유치원부터 7학년까지 350여명이 이곳에서 꿈을 키운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바나나를 하나 먹고 40분씩 걸어서 학교에 온다”는 3학년인 미알러브(11)는 “날씨가 더울 때나 비가 올 때면 지칠 때도 있지만, 새로 지은 학교가 너무 예뻐서 결석을 하고 싶지 않다”고 수줍게 말했다.
학교 주변에는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아이들에게 줄 급식을 만들고, 동네일들도 얘기한다. 마르실루스 교장은 “새로 지어진 학교를 아이들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정말 좋아한다”며 “지진으로 사는 게 어려워지고 불안감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학교를 통해 많이 변화됐다. 이 지역 주민들 모두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으로 남편을 잃은 마리아나 밀리우스(33)씨는 “학교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은 학교에 보낼 거예요.”
밀리우스씨에게 선물로 공책을 전해주자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맙긴 한데… 우리 집엔 책도 없고 교과서도 없어요”라며 아쉬워했다. 마르실루스 교장은 “학교가 새로 지어지면서 아이들이 많이 몰려오고 있어 내년이면 일부는 돌려보내야 할 판”이라며 “유엔 세계식량기구가 지원해준 급식비도 올해로 끝나고, 교무실이나 학부모 상담실로 쓸 여유 공간도 마련해야 하고, 책도 부족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에게 환한 미소를 선물해줬던 제네즈에게도 챙겨간 공책과 필기도구를 건네주었다. 이 키다리 소녀는 공책을 꽉 움켜쥐며 “우리 동네 사람들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데 간호사 언니들이 찾아와 많이 도와줬다”며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간호사가 돼 우리 동네에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성큼성큼 제네즈가 기자와 동행한 한국 월드비전 여직원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
“언니, 언니가 내 대모(代母)가 되어줄래요?”
취재를 위해 여러 번 만난 한국 직원과 그 사이 정이 들었는지 오는 7월의 졸업식에 죽은 엄마 대신 와 달라고 했다. “우리는 다음 주면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서운한 기색을 감추며 덧붙인다.
“그래도 대모가 되어주세요. 한국에 가서도 나를 잊지 말고 꼭 기도해주세요.”
7월이면 초등학교를 마치는 제네즈는 1년 더 케빈학교에서 7학년까지 공부한 뒤에는 도시로 가고 싶어 한다. 간호사가 될 수 있는 직업학교가 이곳에는 없기 때문이다.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혼자 모든 일을 헤쳐 나갈 생각을 하니 하도 막막해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이웃집 친구 나타와 같이 물을 길러 갈 때가 제일 즐겁고, 남자애들에겐 “전혀 관심 없다”고 하는 말괄량이 소녀 제네즈. 수학과 프랑스어 과목이 제일 재밌다고 말하며 활짝 웃을 때, 이 소녀의 얼굴에 바람 한 자락이 스쳐갔다.
3년 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전 세계에서 아이티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지진 난민을 위한 정착촌 건설, 부상자 치료, 도로 학교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재건 같은 긴급구호 사업은 이제 거의 마무리됐다. 사람들은 아이티를 잊었고, 모금액을 다 쓴 구호단체들은 썰물처럼 아이티를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에 가서도 나를 잊지 말고 기도해주세요”라던 제네즈의 간절한 부탁을 기자는 누구에게 전해야 할까. 누가 이 소녀에게 시원한 바람이 되어줄까.
마욘(아이티)=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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