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지진 아픔 딛고 ’희망’ 싹튼다

입력 2013-05-17 17:50 수정 2013-05-17 22:07


한국 월드비전이 아이티에 건립한 ‘케빈학교’를 가다

끊어진 도로와 무너진 골짜기, 낭떠러지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숲 속에 들어섰다. 초록색 교복을 깨끗하게 차려 입은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취재진을 맞아주었다. 그 뒤로 하얀색 건물이 보였다. 케빈학교였다.

3년 전 대지진으로 사상 최악의 비극을 겪은 아이티. 대통령궁도 대성당도 항구와 공항도 무너졌던 이 나라의 산악지대 마욘에 한국인이 심어 놓은 작은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한국 월드비전이 이곳에 재건한 마일롯 초등학교를 국민일보 취재진이 월드비전 구호팀과 함께 찾았다. 학교가 무너지고 마을이 흙더미에 파묻혔던 이곳에 더욱 크고 튼튼한 학교가 우뚝 서 있었다.

이 학교 재건에 앞장선 이는 한국인 탤런트 이광기씨다. 그는 3년 전 첫아들을 신종플루로 잃고 상심해 있었다. 삶의 의욕을 잃고 방송활동까지 그만둔 그는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떠났다. 긴급구호에 참여하다 산골마을 초등학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이 생각났다. 현장을 찾은 이씨는 산골 아이들에게서 아들의 얼굴을 만났다.

모금에 나섰다. 경매도 하고 콘서트도 열었다. 아이티를 다시 찾아가 공사 현장에서도 일했다. 그렇게 다시 세워진 학교. 이름은 ‘케빈’이라 붙였다. 케빈은 죽은 아들의 영어 이름이었다.

케빈학교가 완공된 뒤 처음으로 취재진이 방문했다. 숲 속 어디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지, 6개 교실에서 3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마을주민들도 모여들어 사랑방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마르실루스 교장은 “한국인이 세워준 케빈학교 덕분에 이 지역 모두가 혜택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진으로 무너졌던 아이티에 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욘(아이티)=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