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성도, 실버 전도] 섬기고 베푸는 황혼이 아름답습니다
입력 2013-05-17 16:53 수정 2013-05-17 20:30
인구 노령화와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일과 여가,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시니어 인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55∼79세) 부가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경제활동인구는 지난해 5월 기준 559만9000명으로 7년 전보다 27.8%(155만4000명) 증가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일할 수 있는 노인’이 교회 안팎으로 점차 급증하지만 정작 교회는 이들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강채은 사무총장은 “교회 내 어르신의 수가 늘면서 노인목회에 관심을 갖는 교회와 목회자가 늘고 있으나 체계적인 노인선교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부족한 편”이라며 “노령 인구를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투자대상이 아닌 시혜대상으로 보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신앙심을 바탕으로 젊은이 못지않게 자신의 꿈을 활발히 펼치는 ‘크리스천 시니어’가 있다. 이들은 직장과 교회 직분에서 은퇴한 이후 ‘좀 쉬시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고 있다. 사명으로 인생2막을 연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황혼’에 대해 물었다.
“하나님 일에 은퇴란 없다”
뉴라이프선교회장 강대신(76·영락교회) 안수집사는 1984년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고 선교에 뛰어들었다. 1960년부터 24년간 군 생활을 했던 그가 선교사의 꿈을 갖게 된 것은 군에서 겪은 놀라운 경험이 계기가 됐다.
“1973년 전방에서 작전장교로 근무할 때 중요한 일이 많아 매일같이 야근을 했습니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지쳐가던 중 육군본부로 이동할 기회가 생겼는데 다시 명령이 취소돼 부대에 남게 됐지요. 너무 상심이 돼 모태신앙인 제가 ‘이제 예수 안 믿는다’고 선언하고 술 먹고 밤늦게 집에 와 잠들었는데 이튿날 새벽 5∼6시쯤 제가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이 찾아온 게 아니겠어요. 새벽기도를 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제게 빨리 가 보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 일로 하나님이 살아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 걸 알고 마음을 다잡게 됐지요.”
이후 성경을 읽으며 신앙을 키운 강 집사는 군 생활 동안 전도지를 품고 다니며 동료 장교나 사병에게 전도를 했다. 주일에 교회도 제대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도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대신 그는 제대 후 펼칠 선교활동을 위해 틈틈이 계획을 짰다. 군 예편 뒤 18년 동안 교회 묘지관리자와 무역회사에서 일한 강 집사는 틈틈이 피어선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2007년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파송됐다. 이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2년 반 동안 방글라데시 현지 청소년에게 한글을 가르친 강 집사는 2009년에 한국에 돌아와 지난해 3월 뉴라이프선교회에 합류했다. 선교지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국내 이주노동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더 절실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뉴라이프비전스쿨’에서 선교훈련을 받은 그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마다 서울 광희동 을지로 인근의 몽골·중앙아시아인이 밀집한 몽골타운에서 영어와 몽골어 전도지를 전하고 있다.
크리스천에게 아름다운 황혼이란 ‘자신이 가진 달란트(재능)를 활용해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 강 집사는 한국교회가 선교를 꿈꾸는 시니어들에게 은퇴자를 위한 재교육기관을 제공하길 바람다고 말했다.
“앞으로 교회가 경로당·노인대학이 아닌 ‘은퇴자를 위한 전문학교’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어르신이라고 무조건 위로와 대접만 필요한 건 아닙니다. 교단이나 교회가 시니어 교육기관을 만들어 준다면 여러 어르신들이 선교·봉사 등 여러 분야에 ‘재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이 기꺼이 나설 겁니다. 제도권에서 은퇴했다고 하나님 일에 은퇴한 건 아니니까요.”
“봉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건강할 때 해야”
사회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은퇴한 김명수(76·노량진교회) 은퇴장로는 기아대책에서 후원자에게 전화로 감사인사를 전하는 ‘실버메신저’ 봉사를 11년간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마다 기아대책 사무실에서 오전 10시부터 4시간 동안 평균 80여명, 많게는 100여명의 후원자와 통화하는 김 장로는 즐거워서 하는 봉사기에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 피곤할 텐데, 감사하며 하니 힘들지 않아요. 전 화요일이면 집을 나서기 전에도 기도해요. ‘지구촌에 굶주림이 없어지고 모두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날까지 제가 작게나마 도움이 되게 해달라’고요.”
30년간 가구와 의류사업을 한 그는 고아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았다. 17살 때 신앙생활을 시작한 김 장로는 결혼 후 고아원을 세우기를 꿈꿨지만 가족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신 그는 교회 청소년들과 함께 수도권 인근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로 30년간 봉사활동을 다녔다. 약자를 향한 그의 애정은 해외 빈곤아동에게도 이어졌다. 2002년 아프리카 등 해외 각지에서 굶주리는 어린이의 실상을 알게 된 김 장로는 이들을 위해 돈으로 후원할 뿐 아니라 자원봉사로도 돕기로 결심한 뒤 이를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김 장로는 비록 2010년 척추 수술을 한 뒤로 오래 앉아 있기가 어려워져 봉사시간을 반으로 줄였지만 건강이 유지되는 한 평생 봉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욕심을 비우고 매일을 감사하며 모두를 용서하는 삶’이 크리스천의 아름다운 황혼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크리스천 시니어라면 건강할 때 주저 말고 봉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앙 있는 노인이라면 하나님이 건강 주셨을 때 봉사에 적극 동참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다음이란 없거든요. 죽어서 돈, 시간 가져가는 것 아니잖습니까. 경제적으로 부담된다고 걱정하지 말고 절약해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 보세요. 은혜 받아 더 건강해지는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