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오빠부대

입력 2013-05-17 18:11

전 세계적으로 10억장 이상 음반을 판매한 영국 록밴드 ‘비틀스’는 1963년 말 영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어린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다. 영국 언론들은 비틀스에 열광하는 이들을 ‘비틀마니아(Beatlemania)’로 불렀다. 우리말로 하자면 ‘오빠부대’다. 1964년 2월 7일 미국 뉴욕 JFK공항은 아침 일찍부터 10대와 20대 여성들이 몰려들면서 그 수가 3000명을 넘었다. 더벅머리 젊은이 4명이 영국발 비행기에서 내리자 여성들은 비명을 질렀다. 이틀 뒤 비틀스는 미국 최고의 인기 TV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쇼’에 출연했는데 7300만명이 시청했고 ‘영국의 (문화적) 침략’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오빠부대를 본격 등장시킨 것은 조용필이다. 그가 노래 ‘비련’의 첫 구절인 ‘기도하는∼’을 뽑을 때면 소녀들의 ‘꺄악’ 비명소리가 이어지곤 했다. 데뷔 45주년을 맞아 10년 만에 19집 ‘헬로(Hello)’를 들고 나온 조용필은 이제는 중년이 된 40∼50대 ‘원조 오빠부대’부터 초등학생 팬들까지 접수하며 ‘가왕의 귀환’을 요란스럽게 알렸다.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며 1990년대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서태지가 16살 연하의 여배우와 결혼한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 ‘교실 이데아’ 등 창의성 높은 음악과 사회저항적 가사들로 10대들을 사로잡았다. 1992년 8월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라이브 공연에는 1만여 팬들이 몰렸고, 공연 도중 감격한 소녀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절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발표하자 각 신문에는 ‘X세대 집단 히스테리 증상’ ‘오빠부대 자살도 불사하겠다’ ‘서태지의 결혼, 은퇴 시 30여명 자살 클럽 결성’ 등의 기사가 실리며 세상이 떠들썩했다.

서태지 오빠부대는 노래 ‘시대유감’이 사전심의로 가사가 삭제되는 데 반발해 음반사전심의제 폐지운동을 벌이고 사회공익활동에도 적극 나서면서 팬클럽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놨다는 평가도 받는다. 배우 이지아와의 비밀결혼과 이혼이 2년 전 세상에 뒤늦게 알려지면서 다시 세상을 충격 속에 빠트렸던 그다. 이제 그도 40대에 접어들어 ‘오빠부대’들의 자살 협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결혼하게 됐으니 세월이 참 무상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