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공유경제와 창조경제
입력 2013-05-17 18:22
차를 운전해 주택가를 방문했다가 주차할 곳이 없어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주자우선주차 공간이 비어 있지만 그곳에 주차하는 건 위법이라 찜찜하다. 빈 주차공간을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주자우선주차면을 방문객과 공유(共有)하는 시스템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주차공간 공유는 제공자나 이용자 모두에게 이득이다. 방문객은 적은 비용으로 눈치 보지 않고 주차해 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제공자는 자기가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에 빈 공간을 내 줌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 공공기관은 주차공간을 더 만들지 않아도 되니 예산을 아낄 수 있다. 그야말로 모두가 ‘윈-윈’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유휴공간이나 자원을 나누는 이런 모델을 활용해 다양한 사회적 필요를 해결해 가는 공유기업들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숙박 공유 서비스 기업 에어비앤비(Airbnb)가 대표적이다. 이 기업은 세계 각지의 비어 있는 방, 집, 별장 등을 인터넷을 통해 여행자와 연결시켜 주는 일을 한다. 일종의 민박 중개업이지만 호텔과는 색다른 숙박체험, 페이스북 등을 통한 집주인과 여행객 사이의 신뢰 구축, 철저한 회원관리 등 강점을 앞세워 인기를 끌고 있다. 2008년 8월 출범 후 5년 만에 192개국 3만4800곳 25만개의 숙소를 중개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국내 기업인 피제이티옥㈜의 ‘우주(WOOZOO)’는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해 대학생 등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해 주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다. 방은 혼자 사용하고 부엌·거실·화장실 등은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쏘카(SOCAR)는 서울과 제주지역에서 차량을 필요한 시간만큼 빌려 쓸 수 있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원에 가입하면 회원카드를 이용해 주택가나 대중교통 환승이 편리한 곳에 설치된 쏘카존에서 경차나 중형 하이브리드카를 빌려 이용할 수 있다. 하루 단위로 대여하는 렌터카와 달리 30분 단위로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떠블유컴퍼니가 운영하는 ‘원더렌드’는 텐트, 자전거, 여행가방 등 당장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필요한 사람들이 빌려 쓸 수 있게 중개하는 플랫폼이다.
이처럼 물품이나 공간, 재능을 독점하지 않고 타인과 공유하는 방식의 경제활동을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 한다. 미국 하버드대 법대 로렌스 레식 교수가 2008년 처음 사용한 이 용어에 걸맞은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1년에 공유경제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10가지 방법’ 중 하나로 소개한 바 있다. 공유경제의 가치와 이것이 몰고 올 혁명적 변화를 간파한 것이다.
공유경제는 기존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기 때문에 과잉소비로 인한 환경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창조적이다. 제공자와 이용자 간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공유경제 확산은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한다.
서울시는 공유경제를 도시정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공유도시 서울’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관련 기업이나 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엔 공유단체 및 기업 27곳을 지정해 사업비를 지원했다. 공유경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단체나 기업, 공유활동 희망 시민들을 연계시켜 주는 플랫폼 역할을 ‘서울 공유 허브’도 다음 달 오픈한다.
새 정부가 경제정책 기조로 내건 창조경제는 구체성이 결여된 모호한 개념이라는 지적이 있다. 협력적 소비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참여자들이 윈-윈하는 공유경제. 이런 것이 바로 창조경제가 아닐까.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