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일자리 대물림 단협 무효”… 조합원 가족 우선채용 문화 변화 예고
입력 2013-05-16 22:25
법원이 ‘일자리 대물림’을 명시한 현대자동차 노사의 단체협약이 무효라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렸다. 일부 대기업들의 우대·특별 채용 관행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지법 제3민사부(부장판사 도진기)는 현대차에 근무하다 정년퇴직 후 폐암으로 사망한 황모씨의 유족이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고용의무이행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현대차 단체협약 제96조 조항은 사용자의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내용으로, 단체협약으로 규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유족을 업무능력과 상관없이 고용토록 돼 있는 것은 민법이 규정한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하는 약정”이라며 “근로는 보호돼야 하지만 대를 이어 일자리를 보장하는 방식은 안 된다”고 명시했다.
숨진 황씨는 1979년 3월 현대차 울산공장에 입사해 단조부 열처리 업무 등을 하다가 2009년 12월말 정년퇴직했고, 2011년 3월 폐암으로 숨졌다. 유족은 황씨의 폐암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재해 판정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유족은 단협 제96조 조항에 따라 자녀 1명을 채용해 달라고 현대차에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황씨가 2009년 정년퇴직했고 사망할 당시 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협 적용 대상자가 아니다”고 거부해 소송이 시작됐다.
현대차 노사가 2009년 12월 단체협약을 합의하면서 만들어진 제96조 조항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유족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6개월 이내 특별 채용하도록 돼 있다.
이번 판결로 이와 비슷한 조항이 있는 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노사가 2011년 단협을 통해 마련한 ‘25년 이사 장기근속자 또는 정년퇴직자 자녀에게 가산점 부여’ 조항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도 지난달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직계 가족 1명에 한해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등 일부 기업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하지만 아직 1심 판결이기 때문에 대법원 확정 판결 때까지는 해당 조항이 바뀔지는 미지수다.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라 사측이 변경을 요구하기 힘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해당 조항은 산업재해로 숨지거나 퇴직한 조합원의 가족에 대한 생계대책이나 보상을 위한 것으로 대상자도 몇 명 안 되고 대를 이은 고용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