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어민 피격 사망… 대만·필리핀·중국 ‘미묘한 3각 기류’
입력 2013-05-16 18:57 수정 2013-05-16 00:44
대만이 16일 필리핀과의 경계 해역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만 어민 사망 사건 뒤 남중국해에서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대만 해군은 이날 새벽 ‘제1전함’이라고 불리는 마궁(馬公)함 등 3척의 주력 군함을 바시 해협 남쪽 해역에서 진행된 훈련에 투입했다. 특히 마궁함은 대만과 필리핀이 합의한 잠정 집법선(執法線)인 북위 20도선을 12해리 이상 넘어 들어갔다고 대만 TVBS 방송이 보도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데는 대만과 필리핀은 물론 중국까지 가세한 삼국간 서로 다른 셈법이 얽히고설킨 때문이다.
우선 대만은 필리핀이 자국의 주권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데 대해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필리핀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대만에 국가 대 국가 간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이간질을 시도하는 데 대해 강력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날 “필리핀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술책으로 양안 관계를 이간질함으로써 고비를 넘기려 한 것은 처음부터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대만은 필리핀에 대한 여행 금지 등 1·2차에 걸쳐 모두 11가지 제재 조치를 내놓았다. 대만 언론은 벌써부터 마 총통의 강경 대응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과정에서 필리핀에 대해 대만과 공동 대응을 촉구하면서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대만이 선뜻 중국의 손짓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민은 국무원 대만판공실의 장즈쥔(張志軍) 주임과 양이(楊毅) 대변인이 15일 이번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발언을 한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장 주임은 “중국과 대만이 합동으로 어민 보호에 나서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양이 대변인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양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필리핀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중국에 사과를 했다면 아주 난처한 상황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에 대해 “중국은 필리핀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에 앞서 대만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앞서 나가다가는 자칫 대만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는 16일 "대만과 제3자간 갈등에 중국은 끼어들지 말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필리핀은 대만과 중국 간 갈등을 조장하면서 이번 사건을 적당히 넘기려다 당황하는 기색이다.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15일 대변인 발표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해 유족과 대만 국민에게 유감과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잉주 총통은 이를 국가 간 정식 사과가 아니라면서 수용을 거부했다. 필리핀은 중국과는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만 대만과는 그렇지 않은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다 대만의 강경대응 앞에서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