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악용 소지 많다
입력 2013-05-16 18:17 수정 2013-05-16 22:07
가족의 동의로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안이 제도화될 것으로 보여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환자단체와 종교계 등은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 등 오남용 우려를 제기하며 보다 철저한 안전장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특별위원회는 지난 14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 회의를 통해 도출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를 위한 입법 권고안을 다듬고 있다고 16일 밝혔다. 권고안에 따르면 연명치료 중단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부착, 항암제 투여 등 특수 연명치료에 한정된다. 특별위원회는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 방식으로 본인이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 두는 ‘사전의료의향서(AD)’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인정키로 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임종이 임박한 중환자를 대상으로 의사가 환자 혹은 가족과 협의해 작성하는 것으로, 현재 일선 병원들은 이 방식으로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본인의 명시적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환자의 경우엔 평상시 가치관과 발언을 토대로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추정하는 방식이 인정된다. 의식이 없어 환자 의사를 추정하기 어려우면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전원의 찬성과 의사 2인이 동의해야 한다.
의료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서울대 의대 내과 허대석 교수는 “최근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면서 임종을 앞둔 암 환자 등을 상대로 한 무의미한 연명시술이 감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허 교수팀의 조사 결과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거부한 암 환자 비율은 2007년 85.8%에서 2011년 89.5%로 증가했다.
문제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가족의 동의’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 허 교수팀이 2009년 1월∼2011년 7월 사망한 암 환자 317명을 분석한 결과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는 1.3%에 불과했다. 환자가 결정하고 서명은 가족이 대신한 경우가 4.2%, 환자 입장을 반영해 의료진과 상의해 가족이 작성한 경우가 94.5%였다. 경제적 문제나 의사의 판단오류 등에 의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병원윤리위원회 등 병원 차원에서 구성되는 연명치료 중단 논의 기구 외에 별도의 공적 감시기구를 둬 가족의 선택이나 의사 판단의 적절성 등을 재확인하는 절차가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