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털고 ‘얼굴 세탁’
입력 2013-05-16 18:07
“금고에 20억원이 있다는데….”
지난해 8월 배모(45)씨는 지인 이모(36)씨가 꺼낸 ‘20억’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서울의 한 카지노업체 대표의 운전기사인 이씨는 대표가 카지노 수익금을 집에 있는 금고에 넣어둔다고 했다. 마땅한 직업이 없던 배씨는 이씨에게 “한탕 하자”고 제안했다. 동거녀 신모(43)씨와 후배 정모(40)씨도 끌어들였다.
배씨는 이씨를 통해 카지노 대표가 사는 서울 삼성동 아파트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금고를 운반할 손수레 등 범행도구를 준비하고 금고털이에 앞서 사전답사까지 했다. 지난 1월 아파트에 찾아가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어봤고, 2월엔 아예 비어 있던 집안까지 들어가 금고 위치를 확인했다. 금고가 생각보다 크자 배씨는 승합차를 추가로 준비했다.
영화 같은 작전은 3월 28일 오후 4시35분 시작됐다. 혼자 아파트에 들어간 정씨는 120㎏ 철제금고를 손수레에 실어 입주자처럼 태연히 나왔다. 주변에서 망을 보던 배씨는 금고를 승합차에 싣고 후배가 운영하는 카센터로 가져가 구멍을 뚫었다. 그러나 금고 안에 있던 돈은 20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3억3800만원이었다.
어쨌든 범행에 성공한 이들은 경찰 추적을 피하려 1500만원을 들여 성형수술을 했다. 배씨는 턱을 깎고 눈꺼풀을 올리고 귓불은 늘어뜨렸다. 신씨는 과거 성형수술로 얼굴에 넣었던 보형물을 빼냈다. 숨어 지낼 오피스텔도 빌렸다. 그러나 승합차 앞뒤에 부착했던 위조번호판 중 하나가 떨어지면서 진짜 번호판이 아파트 주차장 CCTV에 찍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6일 현금 1억5000만원, 수표 1억3800만원, 5000만원 상당의 명품시계가 든 금고를 훔친 혐의(특수절도 등)로 배씨와 정씨를 구속하고 신씨와 이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신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