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에 발등 찍힌 朴, 인사 스타일 바뀌나
입력 2013-05-16 18:06 수정 2013-05-16 22:17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통상 ‘수첩 인사’로 표현된다. 눈여겨본 인사들을 필요할 때 기용하는 방식으로 수첩 메모를 열심히 하는 박 대통령을 빗대 야당이 대통령의 ‘나 홀로 인사’를 비판할 때 즐겨 쓰는 문구였다. 박 대통령 본인이나 청와대도 표현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수첩 인사로 대한민국 제1보수여당을 이끌어왔고 박근혜정부 초기 밑그림을 그렸던 박 대통령이 자신의 수첩에 배신당한 형국이 됐다. 방미 기간 성추행 의혹 사건을 일으킨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직접 발탁했다는 게 정설이다. 여당에서조차 불거진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인수위 때부터 5개월 가까이 박 대통령의 ‘입’ 노릇을 했던 윤 전 대변인이 박 대통령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긴 것이다. 박 대통령은 유독 배신에는 가차 없이 차갑게 대처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성장기 및 정치인 시절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15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들과 만찬을 함께하면서 취임 이후 자신의 인사 실패를 인정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반 인사 파동이 국정운영을 마비시켜도 “믿고 맡기면 잘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었다. 고위 공직 후보자의 치명적인 잘못이 드러나고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제기됐지만 “심려를 끼쳐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4월 12일 민주통합당 지도부와의 만찬)며 원인을 정부의 부실한 인사검증 자료로 돌렸다. 자신의 인사 방식이나 청와대 인사검증 절차에 대한 반성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인사 개선책은 철저하고 다면적인 검증과 인사자료 구축, 상시 인사시스템 가동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단 인사 검증대상자에 대해 평소 행실을 포함한 평판 조회가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의 경우 주변을 통한 평판 탐문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반성에서다. 또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인사 추천권을 보장하고 위원 과반의 반대로 인사 대상자를 배제하는 등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미 꾸준히 제기됐던 대안들이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평가다.
결국 박 대통령이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고언(苦言)을 귀담아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 여당에서 나왔다.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은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제시한 개선방향에 대해 “그런 시스템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최종 결정하는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좀 바뀌는 것을 국민들은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