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부강간죄 성립에 우려되는 문제들
입력 2013-05-16 19:14
대법원이 어제 전원합의체를 열어 부부 사이에서도 강간이 성립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부인을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남편에게 최종적으로 유죄를 확정한 것이다. 혼인을 한 부부에게 부과되는 법적 의무 가운데 하나인 동거의무에 강제적인 성행위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 첫 판례로 법률적 및 사회적 의미가 작지 않다.
양성평등시대에 맞춰 비록 부부라 하더라도 원하지 않는 성행위는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선언한 다수 대법관들의 판단은 주목할 만하다. 대법원은 2009년에도 성전환자를 여성으로 인식한 강간 사건에서 획기적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비록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사회 통념상 여성으로 평가되는 성전환자도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婦女)’에 해당한다고 피해자 범위를 넓힌 것이다.
부부 사이 성관계는 일일이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고 말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지만 파탄 지경에 이른 부부는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수긍이 간다. 특히 강간죄의 경우 입법 취지가 여성의 정조(貞操) 보호뿐 아니라 신체의 자유도 포함되기 때문에 판결의 정당성은 더욱 크다. 아내라고 보호 대상에서 빠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파탄을 넘어 이혼 직전에 있는 부부의 경우 이번 합의체 판결이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즉, 이혼 소송을 염두에 두고 고의로 성관계를 기피해 범죄를 유발한 뒤 강간 혐의로 고소함으로써 향후 혼인 해소에 따른 재산분할 소송 등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고소와 소송 남용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논란이 계속 중인 간통죄의 위헌성 여부도 법 논리와 사회 현실이 맞지 않아 쉽사리 해답이 내려지지 않은 경우다. 이를테면 부부 사이라도 성적결정권은 전적으로 본인이 갖고 있는 만큼 일방 당사자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었다 할지라도 국가가 나서서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는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자칫 국가가 간통을 장려하는 것처럼 비춰져 성문화가 문란해질 수 있는 데다 아직까지도 경제적 사회적 강자인 남성이 이혼에는 동의해주지 않으면서 바람만 피울 경우 여성이 일방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처(妻)를 강간의 대상인 부녀에 포함시킴으로써 인격의 주체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킨 전향적 선택을 했다. 다만 수사기관이 판결의 본 정신을 훼손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로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가정해체를 막는 방안도 깊이 있게 논의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