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야구감독과 대통령
입력 2013-05-16 19:23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일까, 선수가 하는 것일까. 내 생각을 말하자면 야구는 선수와 감독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책임 범위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선수가 책임지는 것은 자기 수비위치와 자기 타순에서의 플레이 내용뿐이다. 선수 겸 감독이 아닌 이상에야 선수 개인이 시합 전체의 결과를 책임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다. 1번부터 9번까지의 타자들과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까지의 투수들을 기용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그리고 그렇게 1년간 쌓인 팀의 성적을 책임지는 것, 그게 감독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믿고 내보냈으면 선수가 홈런을 치든 병살타를 치든 그것이 시합에 미친 영향은, 그 장면에서 그 선수를 선택한 감독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선수 개인에게 쏟아지는 원성도 사실 감독 자신의 것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지 3개월. 주변 반대 다 물리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수들로 꾸린 팀의 일원이 경기 초반부터 대형사고를 쳤다. 세계 언론들이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을 집중조명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국식 관행,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결론지었고 중국 일본 영국 언론도 한목소리로 비판하며 재발 가능성을 염려했다. 정신 나간 인사 한 명 때문에 졸지에 온 국민이 성희롱 왕국이라는 전자발찌를 차고 세계인의 눈총을 받게 생겼다.
참담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그들의 손가락질을 당당하게 부인할 수 없는 우리 현실이다. 교수가 학생을, 상사가 부하직원을, 정규직이 계약직사원을, 국회의원이 햇병아리 여기자를. 때론 농담이라 하고 때론 술 때문이라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 어르고 달래서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덮어두고 묻어두었더니 암세포 자라듯 커져서는 애먼 곳에서 터져버렸다. 누구를 탓하랴.
야구에서 감독 책임은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다. 잘못된 체질을 개선해 팀을 재건하는 것. 현재의 성적과 함께 팀의 미래를 제시해야 하는 사람. 대통령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잘못한 선수 하나 정리한다고 팀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기왕에 터진 종기는 다 짜내야 깨끗하게 낫는다. 이참에 우리 사회의 체질을 바꾸고 당당히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의 첫 여성대통령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