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성범죄에 관대한 사회가 문제다
입력 2013-05-16 19:09 수정 2013-05-16 19:10
“범죄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윤창중씨 성추행 묵살하거나 도피 방조 안 했을 것”
며칠 전 미국 연방정부 산하 평등고용기회위원회는 글로벌 물류회사인 ‘뉴 브리드 로지스틱스’에 대해 직장 내 성추행과 성희롱 피해를 당한 여성 3명과 재판에서 피해자 편에 섰다가 해고당한 남성 등 전직 직원 4명에게 85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금을 포함해 150만 달러(약 16억7000만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여성들은 2008년 테네시주 멤피스의 회사 물류창고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동안 상사에게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을 당하고 성적 모욕감을 주는 음담패설에 시달렸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회사에 공식으로 불만을 제기했지만 되레 해고당했다. 성추행에 16억원 넘는 배상금이라니,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요즘 신문지면을 도배하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대한민국의 성문화 수준을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대로 보여준다. 딸 같은 인턴 여학생을 상대로 엄연한 범죄를 저질러놓고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이리저리 해대는 윤씨의 파렴치한 태도도 화가 나지만 성추행 전말을 다 듣고도 묵살하려 하거나 윤씨의 도피를 도운 청와대나 주미 한국문화원의 행태는 성범죄를 하찮게 여기는 무지의 극치를 드러낸다. 오죽했으면 미국 경찰이 피해자와 신고한 문화원 여직원에게 접촉하지 말라고 경고했을까.
20대 초반의 인턴 여학생은 낯선 50대 남자에게 성추행당했다는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갈 것이다. 술 취한 남성에게 엉덩이를 잡혔거나 호텔방에서 알몸의 남자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과거의 악몽 때문에 앞으로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아직도 부하 여직원들을 함께 일하는 조직 구성원이 아니라 ‘을(乙) 중의 을’로 여기는 마초들이 우리 주변엔 널려 있다.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 일단 가해자는 발뺌하거나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린다. 미국에서 성공하고 잘살라는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다”는 윤씨 변명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2006년 여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전 한나라당 의원은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다가 식당 여주인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더 큰 공분을 샀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2002년 집무실에서 직능단체 여성 간부를 성추행했다가 신고 당하자 적반하장으로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상대방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인턴이 일을 잘하지 못해서 야단쳤고, 그것을 위로해주려고 자리를 마련했다는 궁색한 변명이 이어진다. 주변인들은 “재수 없게 걸렸다”는 반응을 보이며 가해자를 두둔하다 못해 급기야 음모론까지 제기한다. 이번 사건을 두고도 “인턴이 야당 유력인사의 현지처”라거나 “뒤에 누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본인이나 본인의 딸이 똑같은 일을 당했어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가해자들이 오히려 기세등등하고, 어렵사리 용기를 내 사실을 밝힌 피해자들이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성추행이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심각한 범죄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데 있다. 재판에 넘겨진 최연희 전 의원은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항소심에선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를 받았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으로 감옥살이를 했다거나 거액의 배상금을 물었다는 얘기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버젓이 본회의장에서 누드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고, 여대생들을 상대로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할 수 있겠느냐”고 농지거리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윤창중 사건은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