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이선우] 직업공무원들을 위한 항변
입력 2013-05-16 19:09
최근 정부는 유연근무제와 같은 일·가정 양립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평가지표에도 포함시킬 만큼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 중이다. 이미 민간기업에서는 기업문화가 뛰어난 곳을 의미하는 GWP(Great Work Place) 개념을 도입해 직원들이 회사에 나오더라도 마치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즐겁고 편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즉 조직구성원들의 업무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 내에서의 인간적인 대우는 필요조건이며, 조직구성원 개개인들의 자아실현과 가정의 행복은 충분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비록 시작단계이기는 하지만, 공무원들을 위한 충분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유연근무제의 한 형태인 시차출퇴근제는 어린아이가 있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직원들의 출근 부담을 줄여주었고 육아휴직제나 시간제근무 역시 직원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에게 필요조건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GWP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쾌적한 근무환경의 조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겨울은 실내온도 18도 이하가 되어야 난방을 하고, 여름에는 28도 이상이 되어야 냉방을 한다. 겨울철은 건물 내에서조차 발과 손이 꽁꽁 얼 정도이고,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온다면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여름철 정부청사 사무실 내의 온도는 32도 이상은 충분히 넘을 것이다. 여름철 직원들의 옷은 푹 젖어 있고, 사무실은 땀 냄새로 진동한다. 컴퓨터는 더운 바람을 뿜어내고, 서쪽에 위치한 사무실은 태양열 때문에 거의 질식할 정도이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고 창조행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에너지 절약이 절실하기는 하지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에너지 소비행태를 변화시키고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확보하지 못한 송전선로의 건설이 우선 해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무실 공간은 고등학교 학생들의 책상 두 배 정도 되는 넓이의 책상과 책꽂이와 서랍이 있을 뿐이다. 세종시로 가면 좀 더 나은 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 기대도 해봤지만, 복도가 좀 더 넓다는 것뿐이지 사무공간은 개선된 바가 없다. 민간이나 공공기관이 추구하는 근무하기 좋은 일터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일하기 좋은 일터로 선정된 기업들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도록 사무실이나 휴식공간을 디자인하고 있다. 기존의 공간개념을 업무유형과 특징에 적합한 맞춤공간으로 변경시킨 것이다.
국민들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대통령과 장관들은 공무원들을 무쇠팔 무쇠다리를 가진 로봇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 공무원들은 병든 동물들을 매장하는 데 동원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정부의 관심은 생각만큼 사려 깊지 못하다. 불이 나거나 재난사고가 생겼을 때 공무원들은 휴일도 없이 동원되며 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명예와 긍지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무조건 희생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공직에 근무하기 때문에 자긍심과 희생정신이 자생될 수 있도록 대우해 줄 필요가 있다. 다행히 이번 정부는 공무원들을 행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생각하고 우대하는 분위기이다. 쾌적한 근무환경 속에서 창조행정도 가능해짐을 인식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쩌다 공무원들이 된 사람들(어공)의 잘못된 행태 때문에 직업공무원들에 대한 시각과 처우에 불이익이 있어서도 아니 되겠다.
이선우(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