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것, 선택한 것들의 진짜 모습은?… 소설집 ‘프랑스식 세탁소’ 낸 정미경

입력 2013-05-16 17:44


“모아둔 단편들을 묶고 보니 5년 만의 소설집이다. 시차를 두고 쓰인 소설들을 읽다 보니 하나같이 아프고 어둡고 쓸쓸하고 막막하고도 불안하다.그건 아마도 내가 누구보다 더 환하고 온기 있는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누군가는 알고 있을까.”(‘작가의 말’)

네 번째 소설집 ‘프랑스식 세탁소’(창비)를 낸 소설가 정미경(53)의 말에 아이러니가 있다. 환하고 온기 있는 삶을 사랑하기에 짐짓 소설 색채는 한결같이 어둡고 쓸쓸하고 막막해졌다니. ‘작가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왜 이렇게 썼을까. 궁금해하다가 수록작들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7편의 수록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제각각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만 겹겹이 싸두었던 자신의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다. 표제작은 복지재단 이사장인 마흔 중반의 남자 ‘나’와 사보에서 우연히 접한 프랑스 요리사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나’는 여비서인 미란과 정을 통하는 관계지만, 미란이 재단비리 의혹에 연루돼 수사를 받게 되자 미란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은연중에 자살로 몰고 간다. 그런 ‘나’에게 요리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으로 살아왔지만 그 자부심을 훼손당하자 끝내 생을 포기한 프랑스 요리사의 이야기는 번민과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철저히 냉담하다.

“그녀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함께 먹은 밍밍하고 멀건 수프 맛 같은 걸 생각한 게 아니라 혹시나 바닥에 흘러 있을지도 모를 내 머리카락이나 체액을 근심했다”(243쪽)라는 문장이 그것. ‘나’야말로 가증스런 속물이지만 적어도 프랑스 요리사의 죽음과 미란의 죽음 사이에서 마음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정미경이 말하고 싶은 것은 진실 앞에서 흔들리는 이런 균열 지점일 것이다.

‘타인의 삶’의 여주인공 ‘나’는 의사인 애인 현규로부터 갑작스런 출가선언을 듣고 난 후에야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이유를 다그쳐 묻는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더욱 난감하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을 할 때가 있어. 그건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래.”(142쪽)

그러나 현규의 직장 동료에게 들은 말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현규는 피곤할 때마다 스스로 모르핀을 주사했다는 것이다. “돌아올까요? 질문을 하면서도 나 역시 그 질문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막연히 내가 알고 있던 현규, 이전의 현규로 다시 돌아올 수는 없을까, 그런 마음과 동시에 이전의 현규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을 뿐이다. 이전의 현규, 원래 현규, 진짜 현규, 그런 게 있을까.”(145∼146쪽)

‘타인의 삶’의 ‘나’가 이렇게 스스로 반문하듯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고 있는 게 과연 진실일까. 아니, 진실의 얼굴을 보았다고 해서 그게 다시 돌아오긴 하는 것일까. 정미경은 생에 내장돼 있는 복잡하고 회복할 수 없는 균열에 대해 쓰고 있다. 그리고 묻는다. 만약 당신 앞에 생의 감춰진 이면이 홀연히 출몰할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