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을 사유자로 불러들인 노래… 김정환 시집 ‘거푸집 연주’

입력 2013-05-16 17:44


“장모 유품 가운데 돋보기안경을 빼면 웃통 벗고 낚싯대/ 아니라 잠자리채 어망 어깨에 걸치고 황혼녘 걸어가는 소년/ 풍경과 ‘16∼20 April 1957 VIET-NAM JAYCEE’/ 글씨 새겨진 검고동색 장식함, 아니 손궤가 제일 그럴 듯 하다./ (중략)/ 테두리 없어지고 쓸데없는 세월도 간소화,/ 장인 장모 가장 잘나갔던 시절의/ 영혼만 담긴 모양이다.”(‘장모 승천’ 부분)

시인 김정환(59·사진)의 신작 시집 ‘거푸집 연주’(창비)는 ‘장모 승천’에서 보듯 죽음에 관한 성찰이 두드러진다.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로르카, 아흐마토바, 실비아 플라스, 박완서, 김근태, 김대중 등 모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시집은 죽음의 거푸집으로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추모의 노래는 아니다. 그는 모기, 거미 등 벌레들을 사유자로 불러들여 죽음을 노래한다.

“너는 이상한 나라 이상한 체위를/ 무슨 결심하듯/ 경배하듯 허공에 단 한번/ 손뼉 짝 박수를 치고/ 속도와 방향의 운이 좋은 그사이 나는 죽는다.” 모기를 2인칭으로 의인화해 들어앉힌 시 ‘이것들이 인간 죽음에 간섭’의 첫 연이지만, 이후 시는 거미, LP음반, 숫자, 간장게장 등을 차례로 호출한 뒤 마지막으로 ‘늙은 몸’을 불러낸다. “죽음이라는/ 소리는/ 거룩한 형식./ 늙은 몸은 번번이 늙은 몸속이고/ 그게 소리다./ 내 몸은 돌과 청동, 그리고 무쇠./ 상상력의 소리인 유리/ 의 소리.”

죽음도 지상에서 작사되고 지상에서 불러지는 지상의 노래인 것이니, 시인은 죽음이라는 거푸집을 연주하는 음악가라도 된다는 말인가. 김정환은 죽음이 음악으로, 음악이 죽음으로 삼투압되는 어떤 경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너는 네가 아니라/ 내 고막에 묻은 작년 매미 울음의/ 전면적, 거울 아니라/ 나의 몸 드러낼 뿐 아니라, 연주가 작곡뿐 아니라/ 음악의 몸일 때/ 피아노를 치지 않고 피아노가 치는 것보다 더 들어와 있는 내 귀로 들어오지 않고 내 귀가 들어오는 것보다 더 들어와 있는/ 너는 나의/ 연주다.// 민주주의여.”(‘서시’ 부분)

시 소설 평론 번역 등 장르를 넘나드는 종합예술가 김정환이 이제 이순에 이르렀으니 모기에게도, 거미에게도, 간장게장에게도 사유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나이 듦을 자축하려는 걸일까. 그러고 보니 거푸집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전망의 거푸집이다. “잘난 사람들은 모른다/ 내 날개가 바로 어깻죽지의/ 운명이라는 것을./ 날아오르는 날개는 없다./ 내 무게보다 더 무거운 어떤/ 떠받침이 있을 뿐.”(‘독수리’ 부분)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