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냥꾼이 찾아낸 한 권의 책, 세계사를 움직이다
입력 2013-05-16 17:26
1417년, 근대의 탄생/스티븐 그린블랫/까치
한마디로 말하자면, 책 한 권이 세계사를 움직였다는 얘기다.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주장이지만 저자는 아주 탁월한 솜씨로 그런 엄청난 결론까지 안전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롭게 항해한다. 이 책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종단하는 지적 여정인데도 전혀 허술하지 않고 구성이 탄탄한 건 풍부한 근거 자료 덕분일 것이다. 책의 말미, 빼곡하게 들어찬 25쪽 분량의 참고문헌이 보증수표처럼 붙어 있다.
이처럼 튼실하게 기초공사를 했으니 저술이라는 집이 튼튼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저술가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영예인 201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제, 세상을 움직였다는 그 어떤 책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1417년, 근대의 탄생’. 문제의 그 책이 발견된 해(1417년)가 근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런 궁금증을 풀기 전에 책의 발견을 가능케 했던 시대적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하듯 우리에게는 낯선, 당시 지식인층에게는 열병처럼 번졌던 지적 유행이 ‘책 사냥’이다. 르네상스를 가능케 했던 인문학적 토양이 되어준 식자층의 문화였다. 설명하자면, 인문학자들이 수도원 도서관을 뒤져 고대, 즉 그리스·로마 시대의 걸작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일에는 라틴어 해독 능력뿐 아니라 지적 감식안이 있어야 하는데, 그 시발은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이다. 그가 고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의 기념비적 저작 ‘로마 건국사’를 발견했고, 철학자 키케로 등의 잊혀졌던 걸작을 찾아내 명성을 얻은 건 1330년쯤이었다. 이후 르네상스 발상지 이탈리아에선 100년간 책 사냥이 대유행했다. 도서관 먼지더미에 묻힌 보석을 찾아내 지적 명성을 얻는 것, 이게 당대 인문주의자들의 로망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포조 브라촐리니도 책 사냥 행렬에 뛰어든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라틴어 번역자이자 고대 유물 수집가이던 그는 모시던 교황 요한네스 23세(재위 1410∼1415)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퇴위가 결정되고 구금되는 사건을 계기로 고대 문헌을 찾아 나섰다. 프랑스의 수도원까지 훑고 뾰족한 수확을 올리지 못한 그는 당시로서는 미답지인 스위스와 독일까지 갔다.
마침내 1417 겨울, 30대 후반의 이 총명한 학자는 독일 남부의 한 수도원에서 먼지 덮인 보석 같은 옛 필사본 한 권을 찾아냈다. 바로 고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장편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다. 총 7400행에 이르는 쉽지 않은 시다. 강렬한 서정적 아름다움의 순간, 종교에 관한 철학적 명상, 쾌락, 죽음, 물질계, 인간사회의 발전, 성의 위험과 즐거움, 그리고 질병의 본질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사유를 6권에 나눠 담았다.
문제는 그 내용들이 당시로서는 금기시되는 위험한 사상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주는 신의 도움 없이도 움직이고, 종교적 공포는 인간 생활의 적이며, 쾌락과 미덕은 대립하는 게 아니라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원자론(原子論)도 담고 있다. 이는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무수한 원자들이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영속적으로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는 ‘일탈’의 결과로 물질이 구성되는 것이며, 이 ‘일탈’이야말로 자유의지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중세 천년 동안 신에 반하는 이단의 사상으로 취급받았다.
포조에 의해 긴 잠에서 깨어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옮겨져 재빨리 필사되면서 세상에 유포됐다. 불온한 생각은 그렇게 퍼져나가 당대 르네상스인의 두뇌 속으로 침투했다. 포조의 발견 이후 100여년이 흐른 1516년에는 피렌체 종교회의에서 이 책을 학교 금서로 정하고 “어길 경우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며, 10두가트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금단의 문은 열린 후였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정치가, 철학자, 화가, 과학자들이 그 금단의 열매에 매료됐다. 시의 세계관은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화가, 마테오 보이아르도, 루도비코 아리오스토 등의 시인을 포함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현재 바티칸에 소장 중인 필사본은 군주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가 필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도 이 책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음으로써 이 시에 심취했음을 드러냈다.
16세기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이 시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상상할 수 없는 작은 물체를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 “작은 원자들의 무리로부터 끌려나와”라는 표현을 썼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통해 가장 결정적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과학자들일 것이다. 근대를 대표하는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 예다. 1632년 예수회는 원자론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금지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그해 출간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통해 원자론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그는 종교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기까지 했다.
17세기 들어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다양한 번역 작업을 통해 대중화됐다. 학자들만 아는 라틴어가 아닌 일상어 즉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사상의 금기 둑이 터진 것이다. 그 결과 이 책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이작 뉴턴, 지그문트 프로이트, 찰스 다윈,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문제적’ 과학자, 심리학자, 생물학자 등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인 스티븐 그린블랫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치밀한 고증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추적해나간다.
저자는 위대한 인문주의자인 책 사냥꾼 포조의 생애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당시 지식인의 우애에 감동하기도 하고, 거대한 관료기구인 교황청의 위선과 타락과 정쟁을 목격하면서 실망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는 르네상스가 근대의 토대가 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운데서도 찬양 일변도로 가지 않고 당대의 종교와 지배계급, 그리고 사회를 비판하는 등 시대의 이면을 보여주는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자료가 뒷받침한 묘사의 구체성,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로서의 맛은 이 책에 시종 생기를 부여한다. 이혜원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