렝스펠트 前 독일 연방하원의원 “북한 지도부 범죄·인권유린 기록 통일 후 사회통합 위해 책임 물어야”
입력 2013-05-15 20:32
“통일 이후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현재 북한 지도부의 범죄나 인권 유린 상황을 기록하는 인권기록보존소 설치가 중요합니다.”
베라 렝스펠트 전 독일 연방하원의원은 15일 법무부가 주최한 ‘독일의 내적 통합 경험과 북한의 인권문제’ 강연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여성 민권운동가 출신인 그는 1990년 3월 구동독 최초로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민선의원으로 선출됐고 통일 후 15년간 독일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했다. 2008년에는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독일연방정부로부터 공로십자훈장을 받았다.
렝스펠트씨가 통일 이후 ‘과거체제 청산’을 위해 강조한 과제는 북한 고위층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다. 독일의 경우 통일 전 동·서독 지휘부가 만나 ‘동·서독 양쪽 법에 모두 들어 있는 내용에 대해서만 사법처리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통일 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동독 수뇌부들은 조약에 특권층을 보호하는 조항을 넣었고 결국 “동독 특권층은 통일 이후에도 특권을 유지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통일 전 동독에서 일반인들은 대학에 들어가기도 힘들었지만 특권층들은 동독 국가보위부(슈타지)가 운영했던 대학에 다녔고 통일 이후 경력을 인정받아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렝스펠트씨는 통일 과정에서 동독을 경제적 파산으로 이끈 책임자 문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부분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는 “통일 당시 동독 경제는 파산 직전이었고 많은 기업들이 살려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도 권력자들은 계속 기업의 대표자리를 유지했고 동독 주민들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동독 특권층들의 권력 비리를 청산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통일 당시 독일 야권 운동가들이 동독 수뇌부에 요구했던 건 ‘특권 내려놓기’였다”고 말했다.
대신 독일은 동독정부와 사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를 운영해 통일 전까지 동독에서 자행되던 인권침해 상황을 기록·관리했다. 인권침해를 당한 망명가들이 직접 자신이 당한 일을 증언해 기록하는 방식이다. 기록소는 통일 이후에도 2년간 유지돼 동독 정부에서 당한 박해나 인권침해 사안을 수집했다. 독일은 통일 이후 기록을 통해 동독 정치범의 복권, 인권 유린 피해자 보상에 나섰다. 슈타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수사해 책임자를 처벌하기도 했다.
렝스펠트씨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동독의 범죄자들과 책임자들을 정확히 지목해 축출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래야만 통일 이후 사회 통합 과정이 잘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